1년전과 달리 “민정이양” 분명히
무슬림형제단과 타협 가능성도 민심을 등에 업고 무혈 쿠데타에 성공한 이집트 군부는 2년여 전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을 전복시킨 ‘아랍의 봄’ 때와는 달리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3일(현지시각)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축출한 뒤 곧바로 임시 대통령을 임명하고, 대통령선거와 총선 등 정치 일정이 담긴 로드맵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이 로드맵이 “광범위한 정치 세력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는 2011년 무바라크 정권 전복 뒤 이집트 최고군사위원회(SCAF)가 보여준 태도와 대비된다고 외신들이 지적했다. 당시 무함마드 후사인 탄타위 국방장관이 이끈 군부는 시위대와 야권 지도자들의 지속된 요구에도 정치 일정을 상세히 밝히지 않아 “민정 이양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받았다. 850여명이 소중한 목숨을 바친 민주화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가 또다시 군사독재정권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절망감은 군에 대한 강한 반감과 함께 세속주의 세력의 이탈을 가져왔다. 결국 근대 서구 민주주의와 거리를 둔 ‘정치의 이슬람화’를 표방한 무슬림형제단에 정권을 넘겨줬다. 현재 이집트 군부는 이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듯 극도로 몸조심을 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지적했다. 군 지도자들은 무르시 정권에 ‘48시간 최후통첩’을 보내기에 앞서 반정부 시위 지도자들과 만나 협의하는 등 강한 민정 이양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상황 탓에 이집트 군부가 과거 무바라크 정권 때처럼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는 않으리라는 관측이 많다. 미국 민간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의 제프 마티니 박사는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군부는 1년여 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등을 포함한 포괄적인 과도정부를 수립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슬림형제단이 야권과 협상하도록 압박한 뒤 이를 거부할 경우 또다른 이슬람 정치세력인 살라피스트를 비롯한 기타 다른 정당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다. 군부의 목표는 친군부 성향의 정권을 세운 뒤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군부가 운영하는 기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 등 기득권을 보장받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군부의 이런 시나리오가 성공할지는 무슬림형제단의 저항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막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저항으로 혼란이 계속되거나 자칫 폭력 사태로 번진다면 군부의 시나리오는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외신들이 분석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집회 멈추지 않겠다” 밝혔지만
여론 중시…전면적 저항 힘들듯
극단주의자 중심 ‘폭력’ 가능성 무슬림형제단 “비폭력 저항” 이집트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무슬림형제단에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들이 군부의 쿠데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이집트 정국의 향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장 무슬림형제단은 쿠데타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다. 게하드 하다드 대변인은 3일(현지시각) 쿠데타 직후 “저항 집회를 멈추지 않겠다. 민주주의가 탈선한 상황에서 시민들에게 (저항 외에) 다른 선택이 뭐가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폭력을 쓰지는 않겠다”며 비폭력 저항 방침을 분명히 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번 반정부 시위를 “세속주의자들과 군부 등 옛 기득권 세력의 야합”으로 규정하며,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시위 사태가 민주적이고 평화적으로 해결되더라도 무르시가 실각한다면 이슬람 세력의 거센 반발이 불가피하리란 전망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무르시가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무슬림형제단이 비폭력 노선을 고수하더라도, 열혈 지지세력과 극단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폭력적인 저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분석했다. 4일 <아에프페>(AFP) 통신은 이집트 군부가 무슬림형제단 최고지도자인 무함마드 바디아 의장을 시위대 살해 연루 혐의로 체포해 카이로로 압송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군부는 집권당 당수를 비롯해 무슬림형제단 간부 38명을 서둘러 감금했다. 이는 무슬림형제단의 분노를 자극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저항이 그리 강하지 않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스위크> 인터넷판은 4일 전직 무슬림형제단 간부의 말을 따서 “무르시 집권 기간에 무슬림형제단의 대중적 지지도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에 전면적인 저항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무슬림형제단이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이집트 최대의 종교·정치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세속주의 세력을 포함한 대중들의 지지였다. 빈민구제 활동 등에 힘써,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 사이에서 ‘정직한 정치세력’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해 대통령을 배출했고 국회도 장악했다. 그러나 2012년 집권에 성공한 뒤 민생은 제쳐두고 정치권력 강화에만 치중하는 바람에 민심을 잃게 됐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군부의 조직적인 반격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정권을 빼앗겼다. 1928년 하산 반나에 의해 설립된 무슬림형제단은 1954년 나세르 군사정권의 혹독한 탄압과 1990년 무력을 앞세운 권력 장악 시도 실패를 겪은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됐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이춘재 기자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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