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거로 집권한 첫 민선 대통령
독단적 국정 운영, 경제난으로 국민 불만 폭발
독단적 국정 운영, 경제난으로 국민 불만 폭발
‘파라오 개헌’ 등 일방통행에
자유주의 세력·기독교계 반발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이 집권 1년 만에 수백만 반정부 시위대와 군부에 의해 축출돼 이집트 정국이 끝을 알 수 없는 혼란에 빠졌다. 무르시 대통령은 2년여 전 ‘아랍의 봄’ 봉기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30년 독재가 무너진 이집트에서 헌정 사상 첫 자유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하지만 무르시 정부는 경제·치안 회복, 사회통합 등에 지지부진하다가 타도 대상이 되어버렸다.
이집트 군부 지도자인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은 3일 밤 9시께(현지시각) 방송에 나와 무르시의 대통령 권한 박탈과 향후 정국 수습 로드맵을 발표했다고 <비비시>(BBC)와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자리에는 집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뺀 거의 모든 정치세력의 지도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야당 지도자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이집트 수니파의 최고지도자, 이집트 기독교인 콥트교의 교황, 집권당에 이은 제2당이자 보수적 이슬람주의 세력(살라피스트)인 누르당의 지도부 등이 로드맵 작성과 발표에 동참했다. 로드맵에 따라 4일 오전 취임한 헌법재판소장 출신 아들리 만수르 임시 대통령은 “시위를 통해 영예로운 혁명의 길을 바로잡았다”며 “무슬림형제단 역시 국민의 일부로 국가 재건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 <가디언>은 “무르시 대통령은 군 시설에 구금돼 있으며, 지지기반인 무슬림형제단 간부 등 300명한테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전했다.
이집트 권력의 핵심축인 군부는 반정부 시위 나흘 만에 무르시를 축출하고 과도 정국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군부는 성명을 통해 “군이 나서달라는 요구가 곧 권력을 맡으라는 뜻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고 선을 그었다.
국제사회는 이집트 군부 개입을 ‘쿠데타’로 규정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수백만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군부 개입을 지지한 탓이다. <에이피> 통신은 “이집트 군부가 미국과 대화했으며,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이집트에 민간 정부가 이른 시일 안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확인해줬다”고 익명의 미국 정부 소식통의 말을 따서 보도했다.
이슬람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등에 업은 무르시 대통령이 축출된 사태의 배경엔, 일차적으로는 이슬람주의와 대립하는 세속·자유주의 세력과 소수 기독교계를 포용하지 못한 일방주의 행태가 있다. 무르시는 지난해 개헌 과정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이슬람주의 색채가 짙은 헌법 개정을 강행해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을 불렀다. 결국 올해 초 유혈 충돌이 생겨 50명 이상이 숨졌고, 야당과 반정부 활동가들은 대규모 시위를 조직했다.
봉기가 일어난 것은 이런 사정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치솟는 물가와 실업률, 식량부족 등 누적된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한 무르시 정부의 무능이 큰 몫을 차지한다. <에이피> 통신은 사태의 이면에 빈곤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집트 9000만명 인구의 절반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연명한다. 유엔 보고서는 식량난을 겪는 이집트 국민의 비율이 2009년 14%에서 3년 만에 17%로 늘어났다고 추산했다. 결국 경제구조 개혁 대신에 무슬림형제단을 중심으로 한 자기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만 골몰한 무르시 정부의 행태에 국민이 폭발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무르시 축출을 2011년 민주화 혁명에 이은 ‘두번째 혁명’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도 나온다. <가디언>은 사설에서 “시시 장관 뒤에 서 있던 이슬람 지도자들은 무르시가 비난받은 헌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세속·자유주의자들과 최악의 대립을 초래하도록 근본주의적 율법 해석을 한 사람들”이라며 “투표함을 창밖으로 내던진 이집트는 2년 전으로 후퇴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자유주의 세력·기독교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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