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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세계는 지금 70년째 3차대전 중

등록 2013-09-04 11:56수정 2013-09-11 17:02

중동 대전 <1>
기독교-이슬람, 수니파-시아파 등 6대 분쟁 ‘현재진행형’
저개발이 불씨…주전선 점점 더 이슬람주의 대 서방으로
세계는 지금 3차대전 중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반응이 나오겠지요?

1차대전이나, 2차대전 처럼 전 세계의 나라들이 편을 지어 전면전을 치르는 상황도 아닌데 무슨 3차대전이냐는 반박이 나올겁니다. 사이비 기자 아니냐고 욕하기도 하겠지요. 저도 사실 이 말이 전적으로 합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후세 역사가들이 2차대전 이후 중동과 이슬람 세계에서 계속되는 분쟁에 대해 과연 어떻게 평가할까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때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격돌한 전쟁 이후 중동뿐만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로 퍼지는 전쟁과 내전, 내란, 테러, 소요 등 모든 분쟁들을 단지 별개의 분쟁으로만 평가할까요?

만약 이 모든 분쟁들에 공통점이나 공통분모가 있다면, 이미 70년이나 지속됐고, 앞으로도 계속될 이 분쟁들을 놓고 역사가들은 그 성격과 정의를 규정하는 용어를 붙일겁니다. 이미 ‘중동분쟁’, 혹은 ‘중동전쟁’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 말은 현재 시점에서 이미 지리적으로도 너무 협소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이 블로그의 문패인 ‘중동대전’이라는 말도, 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동대전이란 용어를 쓴 것은 이미 일반화된 중동분쟁이라는 용어도 있어, 그 개념의 범위와 강도를 확장한 것입니다. 그 정확한 역사적 의미와 성격을 말해주는 용어는 후세 역사가의 몫으로 돌려야 할것입니다.

가장 고질적인 근원지는 이스라엘이 봉쇄한 팔레스타인

어쨌든 제가 3차대전이라는 용어까지 들먹이는 이유를 말해보겠습니다. 먼저 현재 중동 등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진행중 분쟁’을 볼까요.

첫째, 전쟁 수준의 분쟁입니다. 시리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말리 내전이 있어. 모두가 국제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미군 등 외국군이 개입한 전쟁들입니다. 그 전쟁들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히 말할 것입니다.

둘째, 내란 상태의 분쟁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라크 내란, 리비아 내란, 예멘 내란, 소말리아 내란, 파키스칸 변경 지역 내란 등이 있지요. 나이지리아에서도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과 정부군의 내란 상태이고, 아시아의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도 이슬람 반군들이 있습니다.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접경 지대에 걸쳐있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분쟁도 있고. 러시아의 체첸, 다게스탄, 그루지아 등 갑카스 지역에 있는 자치 공화국들도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전쟁과 내전, 내란, 소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세째, 소요와 시위가 계속되는 나라와 지역들입니다.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한 노점상으로 분신으로 촉발된 중동의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지역은 현재 심각한 소요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덜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바레인, 오만, 쿠웨이드 친서방 중동 보수왕정 국가에서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장 고질적인 곳을 빠트렸네요. 중동분쟁의 근원지인 팔레스타인입니다.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가자 지구와 서안지구에서는 전쟁과 내란, 소요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슬람주의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간헐적으로 교전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민중들도 ‘인타파다’(봉기) 수준의 소요와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인근 레바논도 종파와 민족 사이의 내전상태는 많이 완화됐으나, 이스라엘이 심심하면 쳐들어가서 전쟁 상태의 교전행위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슬람권 관련 테러 2011년 70개국 1만여 건, 4만5천여 명 사상 

그럼 이걸 지도로 한번 볼까요? 지도에서 파란 색이 칠해진 곳이 이슬람권 국가들이고, 빨간 별표가 분쟁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이 지도는 제가 구글에서 급하게 찾은 것으로, 사실 현재 이슬람권 분쟁을 나타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먼저, 유럽의 영국과 벨기에에 표시된 빨간 별표는 이슬람권의 분쟁이 아니니 제외해주세요. 말리 내전과 리비아 내란이 표시되어 있지 않고, 북아프리카 지역, 즉 마그레브 지역의 국가들의 소요 사태도 나타나 있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이슬람권 전체를 뒤덮고 있는 테러 사태도 언급해야 겠네요. 미국의 국가대테러센터 2011년 테러리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1년에 70개 국가에서 1만건 이상의 테러가 발생해, 4만5천여명의 희생자가 나왔고, 이중 1만2500명이 사망했습니다. 대부분이 이슬람권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테러 공격 발생에서 상위 15위에 드는 나라로는 아프가니스탄(2872건), 이라크(2265건)으로 두 나라가 절반을 차지하며, 파키스탄(1436건), 인도(673건), 소말리아(614건), 콜롬비아(424건), 타이(305건), 러시아(238건), 이스라엘(189건), 나이지리아(188건), 필리핀(158건), 예멘(99건), 터키(91건), 콩고(52건) 순입니다. 콜롬비아만 제외하고는 전부 이슬람권이거나,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들입니다.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도 아프간(3353명), 이라크(3063명), 파키스탄(2033명) 상위 3개국이 70% 가까이를 차지하네요. 소말리아(1101명), 나이지리아(593명), 인도(479명), 콜롬비아(305명), 타이(238명), 러시아(189명), 수단(189명), 필리핀(188명), 예멘(158명), 콩고(99명), 노르웨이(91명), 시리아(52명) 순입니다. 여기에서 노르웨이라는 북구의 평화로운 나라도 합류했습니다. 이는 극우 기독교백인 우월주의자 유럽에서 이슬람을 소탕하겠다고 벌인 단 한건의 극악한 테러로 인해 발생한 테러의 희생자들입니다. 이슬람과 관련된 테러이지요.

결론적으로 현재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테러의 95%는 이슬람권에서 일어났거나, 이슬람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1948년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2013년 나이지리아 내란까지

지금까지 살펴 본 것은 현재 벌어지는 분쟁입니다. 2차대전 이후 중동과 이슬람권에서 지금까지 벌어진 분쟁들을 통시적으로 볼까요. 영어식으로 고급스럽게 표현한다면, 수평선적(horizontal) 차원이 아니라 수직적(vertical) 차원에서 보죠.

인도와 파키스탄 분리 독립 폭력사태(1947년)⇒1차 중동전쟁(1948년, 이집트 등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전쟁)⇒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년)⇒2차 중동전쟁(1956년)⇒쿠르드 분쟁(1961년~현재 진행중)⇒북예멘내전(1962~1970년)⇒3차 중동전쟁(1967년, 6일전쟁)⇒방글라데시 독립전쟁(1971년)⇒4차 중동전쟁(1973년)⇒레바논 내전(1975~1990년)⇒소련의 침공으로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년)⇒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년)⇒팔레스타인 인티파다(1987~1993년, 민중봉기)⇒2차 아프간 전쟁(1989~1996년, 아프간 내전)⇒걸프전(1990~1991년)⇒알제리 내전(1991~2002년)⇒체첸 전쟁 등 옛 소련 내 민족분쟁(1991년~현재 진행중)⇒소말리아 내전(1991년~현재 진행중)⇒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코소보 전쟁(1998~1999년)⇒9.11테러(2001년)⇒3차 아프간전쟁(2001~현재 진행중)⇒파키스탄 내란(2011년~현재 진행중)⇒이라크 전쟁(2003~2011년)⇒레바논전쟁(2006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전쟁)⇒아랍의 봄 이후 북아프리카와 중동 전역에서 광범위한 소요사태(2010년~현재 진행중)⇒이라크내란(2011년~현재 진행중)⇒리비아 내전(2011년)⇒시리아 내전(2011년~현재 진행중)⇒말리 내전(2013년)⇒나이지리아 내란(2013년)

나열하기도 숨차네요. 위에 나열한 분쟁들은 이슬람권의 대표적인 분쟁일뿐입니다. 그럼 이슬람권 분쟁들의 전개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죠.

중동대전 1기-1차 중동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전쟁까지(1948~1979년)

중동과 이슬람권 분쟁의 본격적 시작은 보통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벌어진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들과의 전쟁입니다. 중동전쟁이라고 불리는 이 분쟁은 70년대 중반까지 4차례나 계속됩니다. 2차대전 때 독일의 나치에게 박해를 당한 유대인들이 옛날 자기 조상들의 땅에 나라를 세우겠다며 시작된 팔레스타인 분쟁은 1948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에 일방적으로 건국을 하면서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 이집트 등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70년대 중반까지 4차례 벌인 전쟁은 중동의 지정학과 역학을 바꾸며, 이슬람권 전체로 분쟁을 확산시키는 근원이 됩니다.

4차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모두 승리했는데, 특히 1967년 이른바 ‘6일전쟁’은 중동 분쟁의 성격을 바꾸는 계기가 됩니다. 이 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은 현대전 사상 유례가 없는 6일만의 완패를 당합니다. 중동의 지도와 지정학이 크게 바뀝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하기는 했으나, 중동과 이슬람권 전역에서 본격적으로 분쟁이 확산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때까지 아랍 국가들을 이끌었던 민족주의, 사회주의 성향의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이 힘을 잃고, 이슬람주의 세력이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됩니다. 중동과 이슬람권의 대중들이 가멜 압델 나세르 당시 이집트 대통령으로 대변되던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에 대해 실망감으로 등을 돌립니다. ‘이슬람식으로 살자’는 이슬람주의 세력에게 끌리기 시작한 것이죠. 나세르 등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들은 당초의 건강한 개혁성향도 상실하면서 독재정권화 됩니다.

아랍 대 서방 및 이스라엘의 투쟁 구도에,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의 투쟁, 권위주의 정권 대 민중들의 투쟁이 추가된 것이죠. 또 이때부터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자체 무장투쟁이 시작되면서, 테러 투쟁이 이 지역에서 본격화됩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라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쟁 단체가 테러를 주요 수단으로 한 무장투쟁을 벌이면서, 중동에 테러투쟁을 전파합니다.

1974년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은 6일전쟁 패배를 만회하고자 전격적으로 이스라엘을 침공해 4차중동전쟁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이스라엘에 격퇴당하며, 사실상 패전합니다. 이 전쟁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벌인 마지막 국가간 전쟁입니다. 그럼, 중동에서의 분쟁은 잦아들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무고한 민간인들이 더 희생당하는 전선없는 전쟁이 이슬람권에서 시작됩니다. 1975년부터 시작된 레바논내전은 앞으로 이슬람권에서 벌어질 분쟁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민족주의와 세속주의 세력 힘 잃고 이슬람주의 득세  

이 전쟁은 사실상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기독교 대 이슬람 종교 분쟁, 수니파 대 시아파 등 이슬람 내부의 종파 분쟁, 아랍 대 이스라엘 및 서방의 반외세 분쟁,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 분쟁, 독재정권 등 권위주의 세력 대 민중들의 민주화 분쟁, 다수 민족 대 소수 민족의 민족분쟁이라는 6대 분쟁이 모두 벌어집니다. 이 6대 분쟁은 현재 이슬람권을 휩쓸고 있는 분쟁들입니다.

인명 손실과 처참함으로 본다면, 중동전쟁보다는 알제리독립전쟁과 인도-파키스탄 분쟁이 더 심합니다. 1947년 영국령 인도가 독립하면서, 같이 섞여살던 이슬람교도들과 다수 주민인 힌두교도들은 각자 파키스탄과 인도로 독립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들과 힌두교도들은 각자의 종교가 다수인 파키스탄과 인도로 몰려들면서 엄청난 폭력 사태가 벌어집니다. 약 1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하는 가운데 최소 20만명에서 최대 100만명이 숨졌습니다. 보통 50만명이 죽었다고 평가합니다. 1971년 파키스탄령이던 현재의 방글라데시인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독립전쟁을 벌입니다. 이 전쟁에서 인도는 방글라데시를 후원하고, 파키스탄과 전쟁을 벌입니다. 이 과정에서 30만~300만명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알제리독립전쟁은 전쟁의 잔혹함과 이슬람주의 세력의 무장투쟁이라는 점에서 향후 이슬람권 분쟁의 성격을 보여주는 첫 분쟁이었습니다. 1954년에는 알제리에서 프랑스의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의 지속으로 독립전쟁이 발발해, 1962년까지 계속됩니다. 전투요원들의 사망자가 약 18만명으로 집계되며, 민간인을 포함하면, 40만~150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됩니다. 잔악한 전쟁행위로 악명을 떨친 이 전쟁은 2차대전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무장력을 발휘한 본격적인 전쟁이자, 프랑스의 드골 정부를 무너뜨린 사건이기도 합니다.

4차 중동전쟁 뒤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상에 들어갑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1978년 캠프데이비드협정을 맺고, 1979년 역사적인 평화협정을 맺습니다.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공존을 약속합니다. 그럼 중동분쟁은 잦아들었을까요? 천만의 소리입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맺던 1979년 중동과 이슬람 세계에서는 분쟁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꿀 사건들이 일어나고, 분쟁을 더욱 확산시키게 됩니다. 1979년은 현대 이슬람 세계에서 전기가 되는 해입니다.

중동대전 2기-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9.11테러까지(1979~2001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1979년 이란에서는 이슬람혁명이 일어나,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됩니다. 중동에서 미국의 최대 동맹국이자, 석유자원 등으로 최대 전략적 국가인 이란이 미국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이탈한 것은 물론이고 강력한 반미국가로 일거에 돌아선 것이죠. 이슬람주의 세력에 의한 이슬람 신정일치 국가가 현실화된 것입니다.

이란혁명뿐만 아닙니다. 그해 12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격적인 소련의 침공이 시작됐습니다. 향후 현대 세계사를 바꿀 사건이 시작된 것이죠. 소련은 아프간의 사회주의 정권이 부족 세력들에 의해 붕괴될 위험에 처하자, 사회주의 정권 지원을 위해 침공한 것이죠. 이란 혁명으로 고무된 이슬람권의 열혈 무슬림들은 소련이 침공하자, 아프가니스탄으로 몰려듭니다. 이슬람 전사들인 무자헤딘들은 아프간의 부족세력과 군벌과 힘을 합쳐, 소련에 대항합니다. 결국 소련은 1989년 철수하고, 무자헤딘들은 승리를 거둡니다.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려고, 이 무자헤딘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미국 중앙정보국이 뉴욕 맨해튼 등에서 공공연히 무자헤딘들을 모집했다고도 합니다. 무자헤딘들인 이슬람 전사들은 나중에 본국으로 돌아가, 불경한 세속주의 정권과 미국 등 외세를 이슬람세계에서 축출하는 이슬람주의 무장투쟁을 벌입니다. 아프간 전쟁을 이슬람주의와 그 무장투쟁 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입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지원하고 키운 이슬람 전사들과 나중에 싸우게 되고, 소련은 이 아프간 전쟁으로 결국 붕괴의 단초를 보게되지요.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도 이 아프간전쟁에 무자헤딘으로 참전하면서 나중에 최고의 이슬람 전사로 거듭납니다.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였던 미국과 소련 주도의 냉전이 붕괴되고, 냉전 대신에 이슬람권 분쟁이라는 새로운 분쟁이 싹트는 계기가 된 것이죠.

지금도 계속되는 아프간 전쟁은 참혹합니다. 소련은 게릴란전을 펴는 무자헤딘들을 진압하려고 초토화 전술을 사용해, 민간인들이 85만~15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프간에서는 소련군이 철수한 뒤에도 무장군벌 사이의 내전에 이어, 2001년 9.11테러 뒤 미국 주도의 서방연합군 침공으로 지금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소 냉전 붕괴되고 이슬람권분쟁 싹터…아랍 깃발 중동국가 반목

중동대전 2기의 또 다른 무대는 이라크입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이란을 상대로 1980년 전격적으로 전쟁을 벌입니다. 이란과 오랫동안 벌여오던 국경분쟁이 명분이었으나, 사실 반혁명 전쟁이었습니다. 후세인은 시아파가 주도한 이란 이슬람혁명의 영향이 이라크의 다수 주민인 시아파를 자극해, 자신의 소수 수니파 정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주와 지원도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 전쟁에서 이라크를 지원하고, 이란 혁명을 전복시키려 했습니다.

1988년까지 계속된 이 전쟁은 중-일 전쟁 이후 가장 긴 국가간 재래식전쟁이었습니다. 국경 지대에서의 참혹한 참호전으로 이라크 군인 30만~90만명, 이란 군인 15만~37만5천명, 모두 45만~128만여명이 죽었습니다. 민간인도 20여만명이 죽었습니다.

두 나라는 유엔의 중재로 1988년 종전을 했습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이란과의 전쟁의 포화가 가시도 전인 1990년 8월 갑자기 쿠웨이트를 다시 침공해 전격 점령합니다. 이는 미국 등 서방의 다국적군을 조직해, 이라크를 침공하는 1991년 1월 걸프전을 야기합니다. 걸프전은 한국전과 베트남전 이후 최대 국제전입니다. 한국도 비전투지원병력을 파견했습니다. 미국 등 서방연합군은 압도적인 전력으로 1달반만에 쿠웨이트를 해방하고 이라크 일부 영토를 점령하고 퇴각했습니다. 후세인 정권을 타도하지는 않았는데, 이는 나중에 9.11테러 이후 이라크 전쟁의 한 계기 됩니다.

후세인은 쿠웨이트가 원래 이라크의 영토였다며 무모하게 전쟁을 일으켰으나, 그 동기는 아직도 미스테리합니다. 다만, 미국 등 서방의 묵인 하에 이란의 전쟁을 치렀는데 전쟁 여파로 국력이 소진되고 경제가 피폐해졌는데, 당시 쿠웨이트 친서방 국가들의 석유 과잉생산으로 이라크의 석유수입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 전쟁으로 그동안 아랍이라는 대의가 있었던 중동 국가들은 서로 반목하게 되고, 이슬람주의 세력도 확장됩니다. 오사마 빈라덴은 후세인 정권을 반대하기는 했으나, 이 전쟁 과정에서 미군이 이슬람의 성지라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자, 강경한 반미주의자로 돌아섭니다. 알카에다를 결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제 이슬람주의 세력은 독자적인 본격적 무장투쟁을 벌입니다. 걸프전이 끝나자마자 1991년 12월 시작된 알제리 내전입니다. 당시 알제리 총선에서 이슬람구국전선이라는 이슬람주의 정당이 압승할 기미가 보이자, 알제리 군부정권은 총선을 무효화합니다. 이에 이슬람주의 세력은 무장단체를 결성하고 지금까지 이슬람권 분쟁 사상에서 가장 잔인한 내전에 들어갑니다.

이슬람무장그룹(GIA), 이슬람무장운동(MIA) 등 이슬람주의 무장단체들은 도시와 산악지대에서 게릴라전과 테러를 벌이며, 2002년까지 투쟁하며 더욱 과격해집니다. 알제리 내전은 알제리 군사정부의 승리로 끝났지만, 4만4천~15만명이 숨졌습니다. 알제리 정부군과 무장 게릴라들은 상대방의 목을 베어서 전시하는 등 잔악한 행위를 경쟁적으로 자행했습니다.

보스니아 내전으로 유럽으로 불똥…알카에다 국제테러조직으로 등장 

1989년 사회주의권 해체와 1991년 소련의 붕괴는 현대 세계사를 바꾼 사건들입니다. 사회주의권 국가, 특히 소련 내의 이슬람 지역 민족들의 분리독립을 촉발시킵니다. 이는 내전과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체첸 전쟁과 보스니아내전입니다. 여러 민족들이 섞여사는 소련의 캅카스 지역이 이 분쟁들의 중심지입니다. 포스트소비에트(소련 이후) 분쟁이라고 불리는 것을 한번 볼까요. 나고르노-카라바크 전쟁(1988~1994년), 남오세티아전쟁(1991~92년), 그루지아내전(1991~93년), 1차압하지아전쟁(1992~93년), 타지키스탄내전(1992~97년), 1차 체첸 전쟁(1994~96년), 2차 압하지아 전쟁(1998년), 다게스탄전쟁(1999년), 2차 체첸전쟁(1999~2009년), 잉구세티아전쟁(2007년~현재 진행중) 등입니다.

이 중 체첸 전쟁은 이슬람권 분쟁에 아프간전쟁에 버금가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슬람이 다수인 체첸은 1994년 분리독립을 선포했으나,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체첸의 분리독립을 허용할 경우, 캅카스 지역의 여러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도미노 현상이 일 것을 우려한 것이죠. 또 이 지역 소수민족들의 독립은 이 지역의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권 상실을 의미합니다. 러시아는 공수특전부대 등 최정예 부대를 파견하며 강경한 진압에 나서, 제2의 아프간전쟁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1차 전쟁에 이어 2차 전쟁까지 치렀으나, 체첸은 분리독립이 저지됩니다. 이 과정에서 약 10만~15만명이 숨졌습니다. 체첸 전쟁은 이슬람 세계에서 아프간 전쟁에 이은 성전으로 인식되어, 이슬람권 전역에서 온 이슬람전사들이 참전했습니다. 체첸의 이슬람 전사들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국제테러 조직의 중추 역할도 하게됩니다.

유고슬라비아 해체 과정에서 일어난 보스니아 내전은 이슬람 관련 분쟁이 유럽에도 불똥을 튀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유고슬라비아의 한 공화국인 보스니아는 이슬람 주민들과 기독교인 동방정교회 계통의 세르비아 주민이 섞여 살았습니다. 유고연방이 붕괴되자, 세르비아계는 이슬람 주민들을 인종청소하면서 내전이 발생합니다. 유고연방의 중추 공화국이었던 세르비아의 지원을 받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잔악행위에 나토 등 서방이 개입해, 세르비아공화국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를 응징하고 데이튼평화협정으로 보스니아를 분할합니다.

아프간 전쟁 뒤 이슬람권 전역으로 퍼진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은 본국에서 무장투쟁을 벌이는 한편 알카에다라는 국제테러조직도 결성해, 대규모 테러를 일으킵니다. 급기야 미국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에 비행기를 충돌시키는 전대미문의 9.11테러가 일어납니다. 9.11테러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촉발시키는 등 이제 이슬람권 분쟁을 그야말로 국제전쟁화합니다.

중동대전 3기-9.11테러에서 현재까지

미국은 9.11테러가 일어난지 한달만인 2001년 10월 알카에다 본부가 은거해있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합니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에게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라덴의 신병을 요구했으나, 거절하자 즉각 침공한 것입니다. 미국은 한달만에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아프간을 점령했으나, 빈라덴과 알카에다는 소탕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파키스탄 국경지대로 도주하고, 미군은 이들을 추격하다가 갑자기 중단합니다.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유인 빈라덴과 알카에다 소탕을 눈 앞에 두고 왜 포기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이유 중의 하나는 곧 이어 감행할 이라크전쟁이었습니다. 알카에다를 완전히 소탕하려면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대규모 지상군 투입과 장기전이 예상됐습니다. 이는 미국이 염두에 뒀던 이라크 전쟁에 부담이 됐기 때문입니다. 아프간전쟁은 또 파키스탄의 아프간 접경지역에서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키워서, 현재 중앙정부의 권력이 못미치는 내란을 야기합니다.

어쨌든 미국은 자신의 대외정책 사상 최대의 실수인 이라크 전쟁을 준비합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알카에다를 지원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나중에 모두 날조된 주장으로 밝혀졌습니다. 알카에다와 후세인 정권이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는데도 미국은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면서 이라크 전쟁을 밀어붙인 것이죠.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이슬람권 분쟁 판도라 상자 열어 

미국은 2003년 3월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한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폴란드 등 3개국으로만 연합군을 구성해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달반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이라크전 종전을 선포했습니다.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5월1일 미국 항모에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함상에서 이라크전 종전을 발표하는 이벤트를 벌였으나, 사실 그때부터 이라크전쟁을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수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내전에다가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가세했습니다. 이라크전쟁은 앞서 말한 이슬람권 6대분쟁을 더욱 확산시켰습니다. 이슬람권 분쟁의 판도라의 상자을 연 것이죠. 특히 이라크전쟁은 9,11테러로 위축됐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을 다시 살리고, 이들을 이슬람권 전역으로 더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2003년 이후 이라크에서 전쟁과 폭력 사태로 얼마나 사람이 죽었는지는 사실 알 수 없습니다. 최소 11만명에서 최대 110만명으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사망자 추정이 10배나 차이가 나는 것은 그만큼 이라크 상황이 통제불능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2011년 미국은 전 국력을 동원해 추적하던 오사마 빈라덴을 파키스탄에서 포착해, 현장에서 사살합니다. 테러와의 전쟁이 종식되리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앞서 중동에서는 광범위한 민주화 시위 사태인 아랍의 봄이 터졌습니다. 빈라데의 제거와 아랍의 봄은 중동에서 이슬람주의 세력 약화와 대중민주주의의 확산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배태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그것은 환상이 됐습니다.

아랍의 봄은 리비아 이집트 등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으나, 그 이후 리비아내전과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이어지면서 이슬람주의 세력의 확장 공간이 됐습니다. 대표적으로 시리아 내전입니다. 2년이 지난 시리아 내전은 이제 사망자가 12만명으로 늘어나고, 화학무기 사용 등의 의혹으로 갈수록 잔인한 전쟁이 되고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 이남 블랙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주의 관련 분쟁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말리 내전에 이어 블랙아프리카의 최대 국가인 나이지리아에서도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에 대한 전쟁이 선포됐습니다.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인 중동대전

이제 지도를 보지요. 이슬람권 지역을 표시한 지역입니다. 색이 짙을수록 이슬람교도가 많은 지역입니다. 색이 짙게 표시된 지역일수록 사실상 이슬람권 분쟁의 강도가 높은 곳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파란 색 지역은 이슬람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 국가이고, 붉은 색 지역은 시아파 국가입니다.

어쨌든 이걸로만 보아도, 이슬람권의 분쟁은 당초 팔레스타인 등 중동 지역에서 계속 더 큰 동심원을 그리며 확산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동서로는 북아프리카 대서양 연안 모로코에서 서태평양 필리핀 민다나오까지, 남북으로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러시아 캅카스 지역과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까지 분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의 중간을 관통하는 분쟁 지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럼 왜 이슬람권에서는 분쟁이 갈수록 확산될까요? 이슬람권 전역에 여전한 저개발이 배경입니다. 이 저개발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갈등이 이슬람권 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슬람권 저개발의 원인은 다양하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 통치 때의 착취와 현재까지 이어지는 미국 등 서방이 자국 이해를 챙기는 대외 정책 때문입니다. 이슬람권 분쟁의 시작인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미국 등 서방의 태도를 보면 잘 알수 있습니다.

저개발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터져나오는 갈등인 이 분쟁은 결국 그 한쪽 당사자가 미국 등 서방 세력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상대편 당사자는 피해자인 이슬람권 대중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이슬람권 대중들을 이끄는 세력들은 다양합니다. 과거에는 아랍 민족주의 등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들이 주요 세력이었습니다. 대표적인 분쟁인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과거 팔레스타인해방기구라는 민족주의, 사회주의 성향의 세속주의 세력이 지도력을 가진 것에서 잘 드러나죠. 또 이집트에서 나세르 전 대통령이나, 최근 물러난 무바라크 대통령이 잘 말해주죠.

그런데, 이 세속주의 근대화 세력이 최근에는 점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들의 무능과 실패에 등을 돌린 이슬람권의 대중들 사이에서는 ‘이슬람식으로 살자’는 이슬람주의 세력이 점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슬람주의 세력도 다양합니다. 알카에다 등 과격한 국제테러 집단에서 현재 이집트에서 정권을 잡은 무슬림형제단의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 같은 온건 이슬람주의 세력도 있습니다.

어쨌든 이슬람권 분쟁의 주전선은 이슬람주의 대 서방으로 점점 옮겨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이슬람권의 6대분쟁도 이 주전선으로 합쳐지고, 또 파생되어 나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주의 세력,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글로벌 세력으로 

서두에서 세계가 지금 3차대전중이라고 과장되게 말한 것은 이슬람권을 덮는 분쟁이 갈수록 이슬람주의 대 서방과의 전쟁이라는 성격을 짙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전쟁은 과거 1차, 2차대전처럼 국가간의 전면전은 아닙니다. 압도적인 국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 등 서방과 이런 재래식 전면전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슬람주의 세력이 통일된 지휘부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슬람주의 세력은 이슬람권 국가의 국경에 얽매이지 않는 글로벌 세력이 되고 있습니다. 1948년 1차 중동전쟁 이후 지금까지 이슬람권 분쟁을 일관된 분쟁이라고 보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특히 9.11테러 이후 이슬람주의 세력과 미국 등 서방과의 분쟁은 이 성격이 짙습니다.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북한의 비대칭전략에 의한 소행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정규 군사력으로는 열세이니, 기습적인 특공부대의 공격으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주장입니다.

현재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국제전, 내전, 내란, 소요, 테러 등은 이런 이슬람주의 세력의 비대칭전의 다양한 표현입니다. 미국이 스스로 말한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비대칭전의 한 표현입니다. 미국에서는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테러 등에 대한 대응을 ‘롱 워’(Long War, 장기전)라고도 말합니다.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지금까지 이슬람권 분쟁을 숨가쁘게 나열한 것은 이 전쟁들이 결국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임을 말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저는 이슬람권에서 벌어지는 이 비대칭적 장기 국제전을 일단 ‘중동대전’이라고 명명하려고 합니다. 저는 이 중동대전을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고 합니다. 이때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슬람주의, 특히 이슬람 무장세력을 전 세계로 퍼트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그럼 197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보지요.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의 중동대전 70년 http://plug.hani.co.kr/middleast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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