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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중동·아프리카

사막의 불사조 300년 동맹, 아라비아 패권

등록 2013-12-16 16:35수정 2013-12-16 16:36

중동대전<7>
척박한 땅 알사우드 부족, 도둑떼에서 사우디왕조
전투적 이슬람 율법학자 와하브 부족은 종교 권력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5년 2월 2차대전 이후 전후 세계질서를 설계한 알타 미영소 정상회의 뒤 귀국길에 중동에 들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국왕을 만나, 두 나라 관계의 초석을 놓는다. 루스벨트의 귀국 전함에 초대된 압둘 아지즈 국왕은 양떼를 몰고와서 도축해서 점심을 차리고, 낮잠을 즐기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루스벨트를 당황하게 했으나 깊은 인상을 각인시킨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1945년 2월 2차대전 이후 전후 세계질서를 설계한 알타 미영소 정상회의 뒤 귀국길에 중동에 들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 아지즈 국왕을 만나, 두 나라 관계의 초석을 놓는다. 루스벨트의 귀국 전함에 초대된 압둘 아지즈 국왕은 양떼를 몰고와서 도축해서 점심을 차리고, 낮잠을 즐기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루스벨트를 당황하게 했으나 깊은 인상을 각인시킨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항하는 무자헤딘의 투쟁을 지원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이 CIA의 대소련 공작 사상 가장 성공적인 길로 접어들게 한 자양분은 사실 이슬람권 내부에서 나왔다. 특히 이슬람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슬람권의 변방인 파키스탄에서 그 자양분의 대부분이 나왔다. 이슬람권의 중심과 변방에서 동시에 분출된 그 자양분은 이슬람주의였다. 이슬람주의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을 계기로 분출되게 된 배경을 보려면 우리는 시계를 멀게는 18세기까지 되돌려, 아라비아 반도 내부의 척박한 사막 지대까지 찾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우디, 미국의 아프간 공작 성공 자양분

세계 2차대전의 판세가 기울어 연합국의 승리로 향하던 1945년 2월14일 소련 크리미아 반도 얄타에서의 미영소 연합국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던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탔던 전함 USS 퀸시 호는 사우디아라비아왕국 홍해로 연결되는 수에즈운하의 그레이트비터 호수에 기착했다. 압달 아지즈 알 사우드가 본명이고 보통 이븐 사우드로 불리는 당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사우드 왕가의 압둘 아지즈 국왕(1876~1953)이 이 배에 올랐다. 양국 정상회담이었다. 정상회담이라는 형태에 어울리지 않게 아지즈 국왕은 양떼를 몰고 와 배에서 도축하여 루스벨트에게 점심으로 대접했다. 또 아지즈 국왕은 미 해군 병사들의 활약을 다룬 홍보영화 상영 때 낮잠에 빠져 몇 시간이나 즐겼다.

루스벨트 대통령으로서는 당황스럽고 곤혹스런 만남이었다. 가장 현대화된 세계 최강국과 어쩌면 가장 전근대적인 나라의 정상의 만남이 빚어낸 기묘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 어울리지 않는 두 나라와 정상들의 첫 만남은 2차대전 이후 양국의 대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동반자를 만든 만남이었다. 아지즈 국왕의 당황스런 행태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그의 행태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를 보고, 그에게 호감을 가졌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례적으로 3일동안이나 계속됐다.

석유 사업가를 포함한 루스벨트의 측근들은 그에게 사우디의 사막 밑에 묻힌 방대한 석유자원에 주목하라고 설득하며, 사우디의 알사우드 왕가를 포용하라고 촉구했었다. 기득권을 가진 영국이 더 나아가기 전에 선수를 치라는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그들의 충고에 따랐다. 2차대전 이후 전후 세계질서를 설계한 얄타 회담이 끝나자마자 사우디를 찾은 것은 2차대전 이후 현대세계 산업의 가장 큰 동력인 석유자원에 대한 미국의 선점, 그리고 이 석유자원이 얽혀든 중동분쟁에 대한 미국의 관심과 개입과 예고하는 것이었다. 루스벨트는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지즈 국왕의 호감을 사서, 제한적으로나마 향후의 경제적, 군사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과 석유 문제를 논의했다. 그때부터 전개될 중동대전의 중요한 원인들이 논의됐다.

독실한 이슬람 추종자이자 생존 생리 꿰뚫는 권력자

아지즈 국왕은 당시 국제사회에 대해 상대적으로 지식이 적었으나, 팔레스타인 땅에 밀고 들어오는 이스라엘 시오니스트에 대한 아랍의 투쟁의 본질은 알고 있었다. 아지즈 국왕은 자신의 알사우드 왕가를 재건해서 현대 사우디아라비아를 건국한 첫 국왕이었다. 이슬람의 종주국을 재건한 그의 이력에 걸맞게 그는 이슬람과 아랍의 대의에 충실한 독신자였다. 그는 또 아라비아의 사막에 난립한 부족들을 전쟁과 회유로 굴복 시킨 이력에서 보듯, 떠오르는 세계 최강국 미국과의 우호관계가 자신과 왕국의 존립에 필수적임을 본능적으로 파악한 노회한 권력자이기도 했다. 이슬람과 아랍의 대의에 대한 독실한 추종자이자, 생존과 권력의 생리를 아는 노회한 권력자로서의 그의 두 모습은 그의 왕국 사우디아라비아가 향후 갈등하며 충돌하는 두 노선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아지즈 국왕의 가문 알사우드는 아라비아 반도 중앙의 고립되고 텅 빈 황량한 사막지대인 네지드 지역의 베두인 유목부족의 부족장 가문이었다. 노란 모래 언덕의 사막 지대인 네지드는 유목민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살기 힘든 척박한 곳으로, 18세기 이후 중동 지역을 분할한 유럽 제국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을 통치했던 오스만 터키 제국의 관심에서도 벗어난 곳이었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이 지역이 자신들의 영역이라고 선포했으나, 이 지역과 주민들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은 없었다. 이 지역은 이슬람의 성지인 홍해 연변의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육로길이라는 것 외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막은 거칠었고, 그곳의 부족들은 더욱 거칠었다. 육로를 통해 메카와 메디나로 가는 무슬림 순례자들은 무리를 지어야만 했고, 강도와 약탈은 거쳐야 할 필수과정이었다.

알사우드 가문이 이끄는 부족은 네지드에 살면서 때로는 순례자들에 대한 공격도 주저하지 않던 그 거친 전투적 부족, 아니 유목민 전투집단의 하나였다. 알사우드와 그 부족이 일종의 도둑떼에서 탈바꿈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주요 세력으로 부상한 계기는 18세기에 아라비아 사막의 완고하면서도 전투적인 이슬람 전도사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오아시스는 당신의 것”-“당신은 우리의 수장”

1744년 알사우드의 수장 무함마드 빈 사우드는 모하메드 이븐 압둘 와하브라는 당시 박해받던 이슬람 율법학자 모하메드 이븐 압둘 와하브(1703~1792)와 300년이 가까이 된 지금까지 그들 가문과 후예들이 지키고 있는 동맹을 맺는다. “오아시스는 당신의 것이다. 당신의 적을 두려워 말라. 알라의 이름으로 모든 네지드 전역이 당신을 내친다고 해도, 우리는 결코 당신의 추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무함마드 빈 사우드가 와하브에게 영원히 계속될 동맹 관계를 제안하자, 와하브는 이렇게 응답했다. “당신은 우리 주민들의 수장이자 현인이다. 나는 당신이 불신자에 맞서 지하드를 펼칠 것이라는 다짐을 나에게 주기를 바란다. 그 보답으로 당신은 무슬림 공동체의 지도자인 이맘이 될 것이며, 나는 종교 문제의 지도자가 될 것이다.”

정치권력을 알사우드 가문이, 종교권력은 와하브 추종자들이 나눠 갖는 권력분점의 동맹을 맺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해 진정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자는 다짐이었다. 이들의 다짐대로 이들의 동맹은 우여곡절과 갈등이 있었으나 지금까지 3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알사우드 가문의 후예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치권력을, 와하브의 종교적 후예들인 알 아쉬-셰이크들은 사우디의 이슬람성직자 공동체인 울라마를 이끌며, 그 나라의 종교적 제도와 기구들을 지배하고 있다. 300년간이나 지속된 이들 동맹은 그 긴 시간만큼이나 탄생부터 지금까지 온갖 간난신고를 겪는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정의길의 중동대전 70년 http://plug.hani.co.kr/middleast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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