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팡이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극장에서 노래하는 모습. 엑스 화면 갈무리
중국 가수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많은 민간인이 숨진 우크라이나의 아조우해의 항구도시 마리우폴 극장에서 옛소련 시절 노래를 불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모독”이라며 발끈했다.
10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왕팡(38)이란 이름의 중국 오페라 여가수가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극장 내부 발코니에서 옛소련 시절 애국주의 노래인 카츄샤를 부르는 모습이 담은 동영상이 최근 온라인에 돌고 있다. 그는 지난주 중국 미디어와 문화계 인물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에 끼어 이곳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남부 아조우해에 접한 항구도시로, 지난해 5월 러시아군의 맹공격으로 함락된 곳이다. 왕팡이 노래한 극장에서 당시 러시아군의 포위 공격 때 마리우폴 시민 몇백명이 피신해 있다가 적어도 몇 십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웅변하듯 건물 곳곳에 파괴된 흔적과 탄흔 자국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마리우폴 시장이었던 바딤 보이첸코는 성명을 내어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많은 시민이 숨진 “비극의 상징”이며 “러시아 전쟁범죄의 상징”인 곳에서 오락을 즐겨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이가 죽었고 아이들도 있었다”면며 “그런 극장을 관광지로 만들고 죽은 이의 뼈 위에서 노래하는 것은 사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도 이번 일에 대해 “완전한 도덕적 타락의 사례”라며 “우크라이나는 중국 시민이 마리우폴에 머무는 목적에 대한 중국 당국의 설명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해온 중국 당국도 이번 사건을 곤혹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의 노래가 담긴 영상과 관련 뉴스는 중국 인터넷에서 곧바로 지워진 상태다.
왕과 그 일행은 이후 자칭 도네츠크공화국의 수반인 데니스 푸실린 등 다른 관계자들을 만났다. 이들과 만난 한 관계자는 소셜미디어에 “푸틴이 ‘중국은 러시아의 형제국가’라고 했다”며 “이들과 관광 분야의 협력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되자 왕은 침묵했다. 대신 그의 남편이자 작가인 저우샤오핑은 아내가 “아무런 정치적 배경도 없는 중국 대중가수”라면서 노래를 통해 평화를 기원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이어 ”나는 개인적으로 내 처의 강인함과 용기, 단호함에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인 왕은 선양음악학원 출신으로 2021년 홍가 관련 음악경연대회에서 우승해 유명해졌다. 중국 내 텔레비전 등에서 종종 군복 차림으로 출연해 노래를 부른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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