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국제 중국

[특파원리포트] “중 공산당은 불법조직” 발언 파문/이상수

등록 2006-04-11 15:51수정 2006-04-13 20:25

중국 ‘싱크탱크’ 집단의 토론회 발언록 인터넷공개 파장
어떤 정치세력이 성공적으로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최선의 방책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중국은 매우 모범적인 사례다.

중국공산당은 산하에 중앙정책연구실이 있고, 국무원 산하에 직속 국책 연구기관으로 중국사회과학원, 국무원 발전연구중심, 중국과학원, 중국공정원 등을 거느리고 있다. 국무원의 각 부처들은 또 나름의 국책 연구기관을 거느리고 있다. 가령 외교부는 국제문제연구소를,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거시경제연구원과 국가정보센터를, 국가안전부는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을, 재정부는 재정과학연구소 등을 두고 있다.

이런 다양한 국책 연구기관에 소속된 수만 명의 고급 두뇌들은 중국공산당의 정책 결정에 중요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중국공산당이 일당독재체제를 고수하고 있으면서도 독단에 흐르지 않고 정책 수립 과정에서 장기적 전망을 바탕으로 비교적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힘은 이 방대한 ‘싱크 탱크’ 집단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그러나 적지 않은 회의와 토론회를 ‘폐문(閉門)회의’(비공개 회의)로 진행하기 때문에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 일반 서민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의 토론회 발언록은 중국공산당의 ‘싱크 탱크’ 집단이 어떤 수준의 발언과 건의를 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게 해 주는 드문 자료다.

인터넷 포털 <화웨논단>은 10일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의 토론회 발언록 전문을 인터넷에 올렸다. 비공개를 전제로 진행한 토론회였기 때문에 토론 참석자들은 비교적 자유롭고 솔직한 발언을 진행했다. 이 때문에 발언록이 공개되자 이들의 발언을 둘러싸고 적지 않은 논란이 벌어졌다.

원로에서 소장학자까지 광범위하게 참석


지난달 4일 베이징 교외의 싱린산장에서 열린 ‘중국 거시경제와 개혁 전망 좌담회’는 중국 최고 의결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0기 4차 전체회의를 하루 앞두고 열렸다. 츠푸린 중국 하이난개혁발전연구원 집행원장이 주재한 이 비공개회의는 각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현 단계 개혁개방의 과제를 듣기 위한 좌담회였다. 이날 좌담회에는 1985년부터 1993년까지 국무원 국가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을 지낸 가오상취안(77)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회장, 장웨이잉(47) 베이징대학 공상관리연구소 소장, 장춘린(49) 중국 주재 세계은행 대표처 전문위원, 리수광(65) 중국정법대학 대학원 부원장, 허웨이팡(46) 베이징대학 법학과 교수 등 원로학자에서 소장학자가 모두 망라됐다. 특히 지난 2004년 중국 당국이 베이징의 인터넷 사설토론방 ‘이타후투’를 폐쇄했을 때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바 있는 허웨이팡 교수 등 중국공산당이 불편해하는 이들까지도 포함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날 회의에서 첫 발언자로 나선 가오상취안 회장은 먼저 최근 개혁에 관한 논쟁이 유례없이 격렬함을 지적했다. 그는 “개혁 반대세력은 현실에 불만을 가진 민중을 선동해 고위층에 압력을 넣으라고 부추기고 있고, 개혁에 반대하는 각종 글을 인터넷에 올려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며 “최근의 개혁 관련 논쟁은 선동적이고 비교적 비합리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스샤오민(56) 중국경제체제개혁연구회 부비서장은 “최근 개혁에 관한 논쟁이 격렬해진 원인은 고위 지도부에서 개혁에 관한 전략을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며, “논쟁은 피하거나 멈출 수 없으므로 이를 되레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개혁개방 이후 탄광사고, 농민문제, 상급방문 청원(상방) 등의 문제가 누적되어와 오늘날 용솟음치고 있는 것이며, 이런 문제를 결코 피해갈 수 없다고 말했다.

“민중이 할 수 있는 건 저항뿐”

리수광 중국정법대학 대학원 부원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매우 중요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했다. 그는 오늘날 중국의 기층 민중이 너무도 무권리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개혁의 동력’을 형성하거나 제공해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1979~1982년 사이 전국에서 상급방문 청원(상방) 건수는 2만건에 지나지 않았으나, 지난해 상방은 무려 3000만건에 이르렀다. 개혁개방 초기에 비해 무려 1500배나 증가한 셈이다. 그는 이런 지표가 현재 중국 기층 민중이 아무런 권리도 권력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풀이한다. 이들이 현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창구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거나, 상방을 하거나 고향에서 항의시위를 벌이는 정도다. 리수광 부원장에 따르면 최근 농민들의 땅 지키기 항쟁은 목숨을 건 항쟁 수준에 이르렀다. 리 부원장은 또 집단 시위가 너무 자주 발생하자, 중앙정법위원회에서 이른바 ‘군체성 사건’에 대한 정의를 바꾸는 일까지 생겨났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이른바 ‘군체성 사건’은 3인 이상의 집단항의를 뜻했으나, 최근에는 ‘20인 이상의 집단항의’로 기준을 ‘상향조정’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른바 ‘군체성 사건’은 매년 큰폭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8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리 부원장은 기층 민중이 아무런 권력도 없어 이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만 할 수 있을 뿐 아무런 개혁의 동력이 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 오늘날 중국 개혁이 부닥친 가장 큰 문제라고 경고했다.

허웨이팡 베이징대 교수 “공산당은 법에 없는 단체” 충격 발언

허웨이팡 베이징대 교수의 발언은 이 발언록 공개 이후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평소에도 자유언론과 민주 법치, 헌정 강화를 주장해온 허 교수는 이날 좌담회에서 “중국공산당은 불법조직”이라는 발언을 해 좌담회 참석자는 물론 중국의 누리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는 “민주 국가에서 모든 단체는 법률에 따라 등기가 되어야 법률상 기소 또는 피기소의 권리를 지님에도 중국공산당과 중국공산청년단 등은 모두 법률에 따라 등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들의 권력 행사에 대해 어떤 법률적 저항이나 기소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조직들이 행사하는 권리는 모두 ‘법외 권리’”라고 단언한 뒤, “후진타오는 ‘전국인대와 각 인대의 위헌 행위를 엄격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자신이 법 바깥의 기구에 속해 있는데 어떻게 위헌에 대해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날 중국공산당과 중국공산청년단 등 정치조직이 법률에 따라 국가에 ‘등기’된 조직이 아니라고 지적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조직의 평등한 법률 등기를 보장하는 ‘다당제’ 개혁을 주장했다. 그는 또 개혁이 제대로 전진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중국 헌법 35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결사·집회·시위·종교 등 정치적 권리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으며, 독립된 사법체계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중국에서는 대법원장인 샤오양이 공안부장인 저우융캉에게 매년 초 업무보고를 올린다”며 “세계의 민주국가 가운데 최고법원의 수석 대법관이 경찰 총수에게 보고를 올리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고 꼬집었다.

쓴소리 경청하는 중국 지도자들

이날 비공개회의의 발언록은 중국공산당 지도부에 보고됐다. 이 격렬한 좌담회는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지만 결국은 “개혁 저지세력의 반발에 부닥쳐 개혁의 깃발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좌담회 이틀 뒤인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인대 상하이 대표단 토론회에 참석한 후진타오 총서기는 “개혁의 방향은 조금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개혁에 대한 결심과 믿음을 한층 더 굳세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이(A)4 용지 60쪽에 이르는 이 좌담회의 방대한 발언록이 인터넷에 공개되자 많은 중국의 누리꾼들은 ‘비공개 회의’의 격렬한 토론과 발언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토론 내용에 대한 반응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른바 ‘좌파’ 성향의 누리꾼들은 이 중국공산당 ‘싱크 탱크’들을 싸잡아 “개혁을 공고히 하려는 게 아니라 중국공산당 정권을 전복하려는 자들”이라고 비난하는 가 하면, ‘우파’ 성향의 누리꾼들은 이들이 “어용학자”이자 “한 무리의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의 개혁개방은 현재 우파와 좌파의 협공을 받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따져보면 세계 어느 나라의 개혁도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하고 혼란스러운 목소리들을 경청하면서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개혁의 동력과 길을 찾아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목소리를 듣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언론 통제와 일당 독재로 비난받는 중국공산당조차 올바른 정책 결정을 위해선 정련되지 않은 다양하고 거친 온갖 목소리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의 정책결정자들이 참고하길 바란다.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lees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국제 많이 보는 기사

네타냐후 자택에 드론 공격…“사상자 없어” 1.

네타냐후 자택에 드론 공격…“사상자 없어”

[영상] 절규하는 젊음...우크라 강제 징집에 몸부림 치는 청년들 2.

[영상] 절규하는 젊음...우크라 강제 징집에 몸부림 치는 청년들

우크라, ‘파병 북한군’ 영상 공개…“넘어가지 마라” “야” 육성 담겨 3.

우크라, ‘파병 북한군’ 영상 공개…“넘어가지 마라” “야” 육성 담겨

해리스 “트럼프, 다음 임기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 4.

해리스 “트럼프, 다음 임기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

이스라엘군은 ‘두문불출’ 신와르를 어떻게 죽였나 5.

이스라엘군은 ‘두문불출’ 신와르를 어떻게 죽였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