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가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압도적인 전력을 앞세워 전방위적인 침공을 개시했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이 이에 꺾이지 않는 결연한 저항 의지를 보이며 전 세계인에게 묘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25일 소셜미디어에 올린 30초짜리 동영상을 보면, ‘우크라이나 탱크맨’의 모습이 등장한다. 빠르게 돌진하는 러시아 군용차로 보이는 차량 수십대 행렬 앞으로 한 남성이 돌진하듯 뛰어든다. 차량 행렬을 막으려는 듯 손으로 제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당황한 군용차는 비틀거리며 옆으로 방향을 틀었다. 1989년 6월 천안문 민주항쟁 때 시위 진압에 나선 인민해방군 탱크를 막아서며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인들의 뜨거운 열망을 전했던 원조 ‘탱크맨’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에이치비>는 이 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인이 점령군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적의 장비로 돌진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덧붙였다. 영상이 찍힌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한 설비회사는 러시아군이 길을 잃게 하기 위해 도로 방향 표지판을 떼어내고 있다고 밝혔다. 도로 및 빌딩 유지 보수 업체인 우크라프토도로는 25일 페이스북에 “적들은 통신 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들을 지옥으로 직행하게 돕자”는 글을 올렸다. 그와 함께 “꺼져라” “또 꺼져라” “러시아로 꺼져라”고 쓴 표지판 합성사진도 첨부했다.
우크라이나인으로 보이는 남성이 러시아 군용차 앞을 막아서고 제지하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인 <에이치비>(HB)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 중 한 장면.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을 지낸 우크라이나의 복싱 영웅이자 수도 키예프 시장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24일 영국 <아이티브이>(ITV)와 한 인터뷰에서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나는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6일 키예프에 저녁 8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행금지령을 내리는 등 키예프 상황 통제를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대립하며 국외를 떠돌다 지난달 귀국한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키예프에서 총을 들었다. 그는 25일 미국 <시엔엔>(CNN)과 키예프 거리에서 칼라시니코프 소총을 들고 인터뷰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영원히”라고 답했다. 그는 이튿날인 26일 영국 <스카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선 방탄조끼를 입고 인터뷰하며 “우리는 키예프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평범한 우크라이나 시민들도 공습이 이어질 때마다 지하철역 같은 임시 대피시설로 이동하며 항전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침공이 우크라이나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통합시키는 듯한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가 대피소에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며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갈무리
전쟁의 와중에도 새 생명은 태어난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러시아군의 공격이 계속된 26일 키예프 지하철역에서 대피 중이었던 23살 여성이 ‘미아’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출산했다고 전했다. 출산 이후 이 여성은 경찰의 도움을 받아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우크라이나 의원 한나 홉코는 신생아의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며 “미아가 태어났다. 우리는 생명과 인간성을 수호한다. 키예프시에 따르면 이 아이는 지난 이틀 동안 대피소에서 태어난 아이 80명 이상 중 한 명”이라고 적었다. 26일 러시아 접경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루간스크(루한스크)의 병원 지하실에서도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나는 시간에도 러시아군은 밖에서 포격을 하는 상황이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인근에 있는 즈미니섬 국경 수비대원들이 러시아 군함의 항복 권유를 거부했다가 몰살된 것으로 알려진 사건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국경수비대가 지난 24일 러시아 군함의 항복 요구를 받자 욕설과 함께 “러시아 군함, 꺼져라”고 답했다는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들 13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는데 살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정정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즈미니섬의 우크라이나군 82명이 모두 항복했다고 발표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