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오른쪽 두번째)과 데니스 쉬미할 총리(맨 오른쪽)가 15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체코의 페트르 피알라 총리(왼쪽 두번째), 폴란드의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오른쪽 세번째)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부총리(왼쪽), 슬로베니아의 야네스 얀사 총리(왼쪽 세번째)와 만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EPA 연합뉴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 어렵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런 입장 표명이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의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영국 런던에서 열린 ‘합동원정군’(JEF) 지도자 회의에서 화상 연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합동원정군은 국제문제에 신속히 대응하기 위해 영국의 주도로 덴마크, 네덜란드,핀란드 등 유럽의 10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군사기구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나는 이것을 잘 안다. 몇년동안 우리는 문이 열려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 들어갈 수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것이 진실이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열린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우리를 돕고,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상대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추진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한 주요한 명분이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이 자국 안보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반대해왔으며, 이는 현재 러시아의 핵심 휴전조건 중 하나이다. 이에 견줘 우크라이나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 반도 강제병합 이후 나토 가입을 국가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왔다. 반면 나토는 2008년 우크라이나의 가입을 허용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회원국 사이의 이견 등을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않아 왔다.
앞서, 우크라이나 언론 <우크라인스카 프라우다>는 9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 ‘국민의 종’이 전날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는 대신 미국·러시아·터키 등이 참여하는 ‘새 안전보장 조약’(new security guarantee agreement)에 서명하는 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국민의 종은 성명에서 “동맹(나토)이 우크라이나를 최소한 다음 15년 동안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우리는 (나토 가입보다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현실적인 것에 대해 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 8일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에 출연해서도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받아들일 뜻이 없다고 이해한 뒤 이 문제에 대해 냉정해졌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보류하면, 러시아가 내걸고 있는 3대 요구사항인 비나치화·비군사화·중립화 가운데 중립화에 대해선 타협의 여지가 생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의 집단 안보를 보장하고 있는 나토 조약 5조의 발동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도 밝혔다. 나토 조약 5조는 어떤 회원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도 나토 회원국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해 달라고 거듭 요청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하늘이 나토 회원국의 하늘처럼 방어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며 “동유럽 회원국이 보호를 요청하면 러시아 미사일이 날아오면 나토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대해 미국 등에선 자칫하면 러시아와 나토가 직접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며, 신중한 입장을 꺾지 않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서도 감사의 뜻을 나타내면서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러시아의 금융과 상품에 대한 전면적인 제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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