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병사 한 명이 2일(현지시각) 호스토멜 지역의 한 공항에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파괴된 세계 최대 수송기 안토노프 AN-25 앞을 걷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중북부에 있는 수도 키이우 지역에서 퇴각했다. 러시아는 대신 5월 초까지 접경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장악에 주력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2일 페이스북을 통해 “키이우 지역 전체가 침략자로부터 해방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일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키이우 지역 등 우크라이나 북부에서 “느리지만 확실히 철군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퇴각하는 러시아군을 쫓아가 북쪽 국경까지 밀어냈다.
키이우 지역에서 러시아군은 전사자와 불탄 탱크, 로켓 발사 차량 등을 뒤로 한 채 퇴각했으며, 지난 2월24일 개전 이후 들렸던 포격과 총 소리가 사라졌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개전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북쪽의 벨라루스를 통해 키이우를 향해 진격했으며, 60㎞ 넘는 부대 행렬이 수도를 향해 늘어서 있다가 최근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와 5차 평화협상 직후 “우크라이나 북부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힌 뒤에 이뤄진 것이다.
키이우 외곽의 부차 거주민인 스베틀라나 세메노바는 “그들(러시아군)이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자신들의 탱크에 싣고 황급히 떠났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몇주 동안 지하에 대피해 있던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밖으로 나와 우크라이나군이 가져온 감자와 빵 가방을 챙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의 추격을 늦추려고 지뢰를 설치하고, 시신에도 기폭 장치를 달았다고 비판했다.
미국 민간 위성업체 맥사테크놀로지가 지난달 31일 찍은 인공위성 사진에서도 러시아군은 진지로 삼았던 안토노프 공항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공항은 키이우 북서쪽 28㎞의 호스토멜에 있다.
<시엔엔>(CNN)은 러시아가 5월 초까지 친러·분리주의 세력이 일부 지역을 장악한 돈바스 지역을 포함한 우크라이나 동부를 통제하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미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관리들은 특히 러시아가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5월9일 승전기념일에 우크라이나 동부에서의 성과를 자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모스크바 크렘린 앞 붉은광장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방안보위원회 서기도 “5월9일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전쟁의 승리 퍼레이드를 목표로 설정했다”고 지난 31일 말한 바 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전 우크라이나 총리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세계의 강력한 단합 때문에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려는 목표에 실패했다”며 “푸틴은 플랜B로 바꿨으며, 그 데드라인은 5월9일”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에서는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하자 이에 고무된 친러·분리주의 세력이 독립을 주장하며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수립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침공을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전략을 바꾼 것은 우크라이나 북부와 내륙에서 우크라이나의 강렬한 저항과 병참 문제, 사기 저하 등이 결합되어 교착이 길어진 데 따른 판단으로 보인다.
대신 우크라이나 동부·남부에서의 충돌은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올렉시 아레스토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2일 “동부와 남부에서 격렬한 전투가 예상된다”며 “동부 전선과 마리우폴을 포함하는 남부 전선에서 우리가 승리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동부 전투를 지원하기 위해 소련제 탱크를 우크라이나로 투입하는 것을 우방들과 함께 돕기로 했다. 미 정부 관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렇게 결정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일 보도했다. 지원할 탱크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용할 줄 아는 소련제 T-72 탱크이며, “며칠 내로” 이송될 것이라고 <시엔엔>이 미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