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피란민들이 몰린 기차역에 대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52명이 숨진 우크라이나 동부 크라마토르스크에서 9일 한 여성이 버스를 타고 떠나며 남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크라마토르스크/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총지휘할 전선사령관을 임명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공세 강화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에 맞대응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온 것보다 강력한 무기들을 지원하기로 해, 치열한 접전이 예고되고 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전체를 지휘할 사령관으로 알렉산드르 드보르니코프 남부군관구 사령관을 임명했다고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그동안 여러 지휘 계통에서 각각 명령을 받아온 러시아군이 단일 지휘관 아래에 놓인 것이다.
전선사령관 임명은 러시아가 집중 공략 대상으로 삼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전과를 올리기 위한 전열 재정비의 일환이다. 드보르니코프는 2015년 내전을 치르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위한 러시아 지원군을 이끈 공로로 ‘러시아연방 영웅’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당시 그가 이끈 러시아군은 민간인 지역 무차별 공습으로 비난받았다. 그는 돈바스 지방 전투에도 간여해왔다.
러시아군이 민간 목표 공격을 강화해온 가운데 이런 경력의 드보르니코프가 지휘봉을 잡으면서 러시아군이 더 잔혹한 전쟁 방식을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피란민들이 모인 기차역에 대한 탄도미사일 공격으로 52명이 목숨을 잃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는 러시아군이 완전한 점령을 노리는 돈바스 지방에 있다. 드보르니코프가 이를 지시했을 가능성도 있다. 파블로 키릴렌코 도네츠크 주지사는 9일에도 러시아군 포격에 민간인 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2차대전 전승기념일(5월9일)을 맞아 과시할 만한 전과를 올리려고 맹공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군 전력이 침공 직전에 견줘 85% 아래로 떨어졌으며, 이를 벌충하려고 징집병과 예비군으로 6만명 이상을 새로 동원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토는 이에 맞서 더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소련제 S-300 대공미사일을 제공했고, 이로 인한 방공망 공백을 메우려고 미국이 패트리엇 미사일 부대를 자국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과거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가 운용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제공을 요구해온 S-300은 미국이 제공하는 견착식 대공미사일에 견줘 사거리가 몇 배이고 방어 범위도 훨씬 넓다. 체코는 소련제 탱크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기도 했다. 미국은 대전차미사일 1만2천개, 대공미사일 1400개, ‘자살 드론’ 수백개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7일 밝혔다. 이날 나토 외무장관 회담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그들이 원하거나 우리가 효과적이라고 믿는 것들을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전달하는 데 무엇도 방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발생한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미사일 공격은 충돌을 더 격렬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고의적 민간시설 공격이라고 했고, 키릴렌코 도네츠크 주지사는 국제적으로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이 쓰였다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러시아의 행동에 대한 자료 확보 과정에서 이번 공격에 대한 조사도 지원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접전지로 떠오른 돈바스 지방은 2014년 이래 친러 반군이 3분의 1가량을 점령한 상태인데,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군이 장악한 지역까지 합치면 반 정도가 러시아 쪽에 넘어갔다. 이곳을 둘러싼 전황 전망은 엇갈린다. 러시아군이 그동안 노출한 약점을 보완할 것이고, 도시 지역과 달리 구조물이 적고 시야가 트인 곳이라 우크라이나군의 게릴라식 전법 구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반면 러시아군의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소되기 어려우므로 나토의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계속 선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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