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이 모스크바 크레믈에서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개발공사 회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제공. 타스 연합뉴스
서방이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대규모 대러 경제 추가 제재를 가하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됐다. 단기적으로 보면 제재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장기적으론 러시아 경제에 큰 상흔을 남길 것이란 분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2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러시아 경제에 당장 붕괴 위험 징후는 없다. 러시아 화폐인 ‘루블’은 전쟁 직후 한때 40%까지 폭락하며 급전직하했지만, 다시 회복해 이젠 오히려 전쟁 전보다 조금 더 가치가 높아졌다. 러시아 정부가 강력한 외환 통제에 나서면서 수입과 외환거래가 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제재로 외국 제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물가 상승을 겪고 있지만, 실업률도 아직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는 등 지표상으론 큰 문제가 없다.
또 원유와 천연가스 등 주요 수출품도 서구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제시장에 팔려나가고 있으며,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 카페와 음식점 등에선 변함없이 손님들이 북적이고 있다. 스타벅스와 맥도날드 같은 세계적 외식 브랜드가 러시아에서 철수했지만, 이 회사들 러시아 내 자산을 사들인 러시아 업체가 예전과 비슷한 형태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가 6% 후퇴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아직 파국의 순간과는 거리가 먼 분위기다.
하지만, 러시아 경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빨간 불도 여러 곳에서 켜지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제조업 생산이 곤두박질쳤다. 외국산 부품이 제재로 수입 중지되며 공장 기계설비가 놀고 있는 곳이 많으며, 덩달아 강제 휴가 중인 인력도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의 통계에 따르더라도 올해 전반기 러시아의 산업생산량은 거의 62%나 줄어들었다.
러시아 최대판매 차량인 ‘라다’의 제조사인 ‘아브토바즈’는 몇 달째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대 주주인 프랑스 자동차 회사 르노는 보유 지분 68%를 러시아 국영회사에 단돈 1루블에 넘기고 떠났다. 아브토바즈는 지난 6월 순수 러시아산 부품만 사용했으나, 에어백과 잠김방지브레이크장치(ABS), 에어컨은 장착되지 않은 라다 생산에 나섰다. 러시아에서 60만명을 고용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서 많은 이들이 이미 급여를 3분의 2만 받는 조건 등으로 강제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실업률을 4%로 유지하기 위해 기업에 노동자를 해고하지 말고 급여를 줄이더라도 일자리 나누기나 휴직제 등을 활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고통분담 조처로는 단기간 어려운 순간을 버틸 순 있지만 문제를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소매 판매도 2분기 들어 지난해보다 10% 줄었고, 소비자신뢰도는 2015년 이후 최저치다. 지난달 러시아가 발표한 연방정부 재정적자도 9천억 루블(20조원)로 지디피(GDP·국내총생산) 8% 수준에 이르렀다. 파리정치대학의 세르게이 구리에프는 “푸틴에겐 아직 전쟁 직후 석유값 폭등으로 벌어들인 돈이 있지만 제재가 이제 작동에 들어가면서 목을 죄기 시작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서구의 제재에는 여전히 구멍도 많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은 올 연말이 되어야 러시아 원유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획을 밝혀놓고 있다. 중국과 인도, 튀르키예 등 몇몇 나라가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러시아 제재 그물을 더욱 성기게 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주 러시아 기업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활용하려고 한다며 튀르키예 재무부에 우려를 제기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