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핀란드 만에서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고 수영을 즐기고 있다. A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러시아 관광객을 상대로 비자를 계속 발급할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섯달째를 맞고 있는데, 러시아인들이 유럽에서 자유롭게 놀러 다닐 수 있도록 놔두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유럽 각국에서 나온다.
24일(현지시각) <도이체 벨레>는 “유럽연합에서 러시아인에 대한 관광비자 발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2일 독일 신문 <빌트>는 바이에른 지역 정당인 기독교사회연합(CSU) 소속 안드레아 린드홀츠 독일 연방의회 하원의원이 “러시아인에 대한 관광비자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 관광객에 대한 전면적인 비자 발급 금지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러시아 정권에 반대해 러시아를 벗어나려는 이들이 많고 이들을 유럽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유를 든다. <도이체 벨레>는 “몇몇 유럽연합 국가들 역시 법적, 인도적 문제를 이유로 러시아인, 특히 러시아에 반대하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전면적으로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로 러시아와 유럽을 오가는 하늘길 막혔지만 육로 이동은 가능하며, 러시아 시민들은 차량 등을 이용해 인접한 유럽 국가들로 여행을 다닌다.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유럽연합 회원 5개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핀란드는 러시아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이미 제한하고 있다. 러시아와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발트해 3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에스토니아는 러시아 시민의 경우 이미 에스토니아에 거주하고 있거나 친척이 거주하는 경우 등에만 제한적으로 입국을 허용한다. 라트비아는 친척의 장례식 참석 등 제한적 목적의 방문만 허가하고 있다. 에스토니아는 일반 러시아 시민의 여행 금지 조치가 ‘유럽연합 전역’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인들이 국경을 접한 국가들을 통해 들어온 뒤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유럽연합과 스위스·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아이슬란드는 국경 검문을 철폐한 ‘솅겐 조약’에 가입되어 있어, 가입국 내에서는 비자 없이도 이동할 수 있다. 일부 국가들이 비자 발급을 제한하더라도 일단 러시아인이 한 번 유럽연합 안으로 들어오면 여권 검사, 비자 등 없이 이동할 수 있으니, 유럽연합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유럽연합 국가 중 러시아와 마주한 국경선이 약 1400㎞로 가장 긴 핀란드는 러시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싶어한다. 핀란드 국내법상 제약 때문에 비자 발급을 완전히 중단하는 조처를 취하지는 못하고, 다음달부터 영사관 등의 운영 시간을 단축하는 방식으로 비슷한 효과를 내려고 한다. 러시아를 강력히 비판하며 우크라이나 지원에도 앞장서고 있는 폴란드 조만간 관련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는 지난 4월 러시아가 일부 네덜란드 대사관 직원을 추방한 뒤 러시아인에 대한 단기 비자 발급을 중단했지만, ‘긴급한 인도적 사유’에 한해 단기 비자를 내주고 있다.
올해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국인 체코는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 벨라루스 시민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유럽연합 차원 러시아인 비자 발급 제한 조처는 이달 말 열리는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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