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경찰이 21일 저녁 모스크바에서 동원령 반대 시위 참여자를 제압해 끌고가려 하고 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각) 발표한 ‘부분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러시아 곳곳에서 일어났다.
러시아의 인권단체 ‘오브이디 인포’(OVD-Info)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동원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전국 37개 도시에서 일어나 800명 이상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는 지난 2월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일어난 사실상 첫 전국적 규모의 시위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모스크바에선 이날 저녁 시위대가 모여 “전쟁 반대”를 외쳤다. 그러자 15분 만에 무장 경찰이 출동해 적어도 십여명을 체포해 끌고 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한 시위 참여자는 “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며 “그들이 빼앗아 갈 수 있는 가장 귀중한 건 우리 아이들의 목숨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가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별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내 의견을 표현하는 건 내 시민적 권리”라고 대답했다.
러시아에서 네번째로 큰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선 40여명이 모여 동원령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부 시민들이 체포돼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갔다. 휠체어를 탄 한 여성 시위자는 “빌어먹을 대머리 미친놈이 우리 머리에 폭탄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우리는 그 놈을 지켜주고 있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겠다”고 외쳤다.
‘베스나’ 등 반전 단체와 야당 지도자들은 시민들에게 반전시위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베스나는 “우리의 아버지, 형제, 남편이 전쟁이라는 믹서기에 던져지고 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해 죽고, 어머니와 아이들은 누구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가”라고 호소했다. 수감 중인 러시아 반정부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도 변호인들이 공개한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이 범죄적 전쟁이 더욱 악화, 심화하고 있고 푸틴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여기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푸틴은 수많은 사람을 피로 물들이려 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항의시위를 독려했다.
이처럼 시위 소식과 시위 참여를 독려하는 목소리가 온라인을 통해 퍼지자, 러시아 검찰은 누구든 시위를 호소하거나 독려하면 최대 15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 통신 당국은 언론사에 동원령과 관련해 잘못된 정보를 올려놓는 웹사이트는 접속 차단 조치를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외로 탈출하려는 러시아인들도 늘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무비자로 갈 수 있는 튀르키예(터키) 이스탄불, 아르메니아 예레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아제르바이잔 바쿠 등과 연결되는 항공편은 매진됐다. 17살 아들과 아르메니아에 도착한 세르게이는 “전쟁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러시아인 발레리는 “처가가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다”며 “동원령은 도덕적 측면에서만 봐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의문의 여지기 없이 잘못됐다)”고 말했다. 또 구글 등 검색 사이트에서는 ‘팔 부러뜨리는 법’, ‘징병을 피하는 법’ 등을 검색하는 러시아인이 늘어났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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