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의 이지움에서 발견된 ‘피에프엠(PFM)-1S’ 대인지뢰 잔해물. 출처:휴먼라이츠워치 누리집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의 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해놓고도 전쟁 중에 지뢰를 사용했다고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위치’가 31일(현지시각) 비판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동부 도시 이줌과 주변 지역에 로켓을 이용해 대인 지뢰 수천 발을 뿌렸고, 이는 대인 지뢰 사용을 금지한 ‘오타와협약’ 위반이라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에 속하는 이줌을 지난해 4월 점령했다가 9월 철수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매리 웨어험은 ”전체 상황을 봤을 때 우크라이나군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광범위한 증거들이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1997년 오타와협약에 서명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휴먼라이츠워치의 주장을 “잘 알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의 감독관청에서 적절한 절차에 따라 살펴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또 “우크라이나군은 유엔헌장 51조에 따라 자위권을 행사하며 국제사회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 점령군은 전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러시아군이 철군한 직후 이줌을 방문해 지뢰 피해자와 목격자, 의사, 지뢰제거 대원을 포함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과 인터뷰한 결과, 우크라이나군이 9곳에 ‘우라간’(Uragan) 로켓으로 ‘피에프엠(PFM) 지뢰’를 대량 살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라간은 1970년대 옛소련에서 개발한 다연장로켓이며, 피에프엠 지뢰는 생긴 모양 때문에 ‘나비 지뢰’ 또는 ‘꽃잎 지뢰’로도 불리는 대인 지뢰로, 주먹만한 크기에 날개가 달려 있어 로켓이나 대포는 물론 헬기와 항공기로 공중에서 대량 살포할 수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뢰는 러시아군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나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도 발견됐다. 또 지역 의료 종사자들은 지뢰로 부상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주민 50명여명을 치료했다고 증언했다. 이들 부상자의 절반은 말목이나 다리 아래 부분이 잘려나갔으며, 이는 전형적인 지뢰 사고 양상이다. 지뢰제거 대원들은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데 몇십 년이 걸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지뢰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고 웨어럼이 밝혔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이미 러시아군의 지뢰 살포에 대해 비판하는 보고서를 세 차례 낸 바 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지뢰 사용이 우크라이나군의 지뢰 사용에 면죄부를 주진 않는다고 휴먼라이츠워치는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오타와 협약 가입국인 반면, 러시아는 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이다. 협약 미가입국에는 러시아 말고도 미국과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남북한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휴먼라이츠워치에 대인지뢰 사용 금지 등 국제사회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면서도 피에프엠 지뢰를 이줌에서 사용했는지 여부에 대해선 “사용한 무기의 종류에 대해선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웨어험은 지난해와 달리 이번 지뢰 관련 발표에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것에 대해 평가한다며 “우크라이나 정부가 철저히 조사해” 대책을 세워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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