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6일 모스크바에서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오른쪽 셋째) 등 주요 고위 관료들과 회의를 하고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용병 집단인 바그너(와그너)그룹의 24일 반란 이후 이틀이 지나면서, 중요 행위자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반란의 ‘주인공’인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창립자는 자신이 벌인 행동의 정당성을 강변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탓하기에 바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달 초 시작된 ‘대반격’의 성과를 내기 위해 최전선 부대를 시찰했다.
이번 반란의 핵심 당사자인 프리고진은 26일(현지시각) 텔레그램을 통해 공개한 음성 메시지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의의 행진’이라 주장하며 “우리는 불의 때문에 행진에 나선 것이지 우리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경 인근 도시 로스토프나도누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800㎞가량 진군한 뒤 행동을 멈춘 이유에 대해선 “많은 피를 흘릴 게 분명해진 순간 행동을 멈췄다”며 자신의 행동이 진짜 국가를 전복하려는 반역 행위가 아닌 ‘항의성 행진’이었다고 강변했다.
프리고진의 전용기는 27일 벨라루스에 도착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오전 미국의 제재 목록에서 프리고진과 연결된 것으로 등록된 엠브라에르 레거시 600 제트기가 벨라루스에 도착한 것을 항공기 항적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레이더24’를 통해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도 이날 밤 대국민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무장 반란이 일어난 뒤 “위협을 무력화하기 위한 모든 필요한 결정을 즉각 내렸다”며 “무장 반란은 어떤 식으로든 진압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그너그룹이 모스크바 근처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접근한 것에 대해선 “처음부터 대규모 유혈사태를 피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러시아 사회가 바그너그룹의 행동을 거부하고 있다는 걸 대원들이 이해할 시간을 주는 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무장 병력이 빠르게 진격할 수 있었던 게 자신의 무능이나 무대책 때문이 아니라, 병사들에게 냉정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주려는 계획된 선택이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또 반란에 참여한 일반 병사들에겐 “국방부와 계약하거나 집에 가도 된다. 아니면 벨라루스로 갈 수 있다”며 안전 보장을 재확인했다. 관영 <리아 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참가자들이 스스로 행동을 중지했다”는 이유를 들며 바그너그룹 반역죄 수사를 종결했다고 밝혔다고 27일 보도했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프리고진에 대한 처우에 대해선 말을 아꼈고, 푸틴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프리고진에게 보복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푸틴 대통령이 나아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크라이나와 미국 등 서구였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의 적인 키이우(우크라이나)와 그 서구 후원자들, 온갖 부류의 반역자들이 원한 동족 살해 바로 그것”이라며 “그들은 러시아 군인들이 서로를 살해하고, 군인과 민간인들이 죽어 결국 러시아가 패하고, 우리 사회가 쪼개지고, 유혈 갈등으로 질식되기를 원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6일 도네츠크주의 최전선 부대를 방문해 현장을 지휘하는 사령관의 전황 보고를 들으며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도네츠크/로이터 연합뉴스
비판을 당한 당사자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공개 연설에서 이번 사태는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또 사태 직후 핵심 동맹국 정상들과 통화하면서 “이 문제로 푸틴한테 서구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비난할 핑계를 주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며 “이 사건은 러시아 체제 내부 싸움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지지부진한 ‘대반격’ 작전의 돌파구를 뚫으려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도네츠크·자포리자주의 최전선 부대를 시찰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우리 전사들은 오늘 모든 방향으로 전진했다”며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가디언>은 친러시아 텔레그램 채널들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군이 이날 드니프로강을 건너 러시아가 점령 중이던 강 동쪽 마을을 점령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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