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서 러시아가 식량·핵·어린이 등을 “무기화”하고 있다면서 이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유엔 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지금 가장 무서운 것은 핵무기가 아니다. 침략자는 많은 것들을 무기화하고, 이는 우리 나라뿐 아니라 당신들의 나라에 대해서도 적대적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가 10년마다 새 전쟁을 시작한다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번 침략에 성공하면 “유엔 총회장의 많은 좌석이 비어있게 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몰도바와 조지아 영토 일부가 러시아 점령 아래 있고, 러시아가 화학무기를 동원해 시리아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벨라루스를 거의 집어삼켰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제 카자흐스탄과 발트 해 연안 국가까지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총회엔 화상으로 참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날 연설의 키워드는 러시아의 ‘무기화’였다. 그는 현재 무기 자체를 제한하는 많은 협약이 있지만 ‘무기화’에 대한 실질적인 제한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세 가지 예를 들었다.
첫번째는 ‘식량’이었다.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길인 흑해를 항로를 차단한 뒤 지금은 그 대안인 다뉴브강 항구를 겨냥해 미사일·드론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은 “점령한 영토의 일부를 인정받기 위해 식량을 무기화하려는 명백한 시도”라며 또한 “러시아가 식량 가격을 무기화해 아프리카에서 동남아시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아가 러시아가 ‘핵에너지’를 무기화한다고 꼬집었다. 유럽 최대 원전인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을 포격하고 점령하면서 현재는 방사능 유출 위협까지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핵발전소를 무기화하는데 (전 세계가) 핵무기를 줄이는 것이 의미가 있겠냐”고 되물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아이들’ 수십만명을 납치해 추방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지난 3월 이 혐의로 푸틴 대통령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한 사실을 짚었다. 그는 “이 아이들은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증오하도록 교육을 받고 가족과의 모든 관계가 끊어졌다”라며 “이는 명백한 대량 학살”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러시아에 우호적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조차도 “우크라이나에서 추방된 어린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며 지지 입장을 나타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아가 러시아가 기후를 무기화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했다. 그는 “다행히 사람들이 아직 기후를 무기화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다”면서도 “일부 악한 국가는 그 (기후위기의 결과) 역시 무기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지난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때 공개한 우크라이나의
‘평화 공식’을 재차 강조하며 러시아의 “무기화를 막아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이 공식에는 러시아의 적대행위 중단, 우크라이나 전 영토에서의 완전한 철수, 안전 보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전쟁이 1년7개월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일각에선 이번 전쟁을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영토를 일부 떼어 주고 전쟁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대해 “배후에 있는 수상한 거래”라며 러시아와 협상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러시아에 대항해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가 지난달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진 러시아 용병 집단인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었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을 언급하면서 “푸틴의 약속을 믿는 사람이 있는지 프리고진에서 물어보라”고 말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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