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네 번째)이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UDCG)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나토 제공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처음으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를 깜짝 방문해 지속적인 군사 지원을 호소했다. 우크라이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무력 충돌에 전세계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 등으로 자국에 대한 지원이 줄어들까 우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UDCG) 회의에 참석해 “솔직히 말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 상황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위험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나토 본부를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브뤼셀에서 기자들에게 “전세계에 다른 비극이 발생하면, 한정된 군사 지원을 나눠야 한다”며 “러시아는 지원이 나뉘기를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상황은 “우크라이나에만 해당하는 위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돕지 않으면 러시아가 힘을 얻고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유럽연합(EU) 국가로 전진할 거다. 모두에게 가장 저렴한 선택지는 러시아를 우리 영토에서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4일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이 해임되며 미국 의회 혼란이 계속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미국 선거와 관련해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며 “파트너들은 지원이 유지될 거라고 했지만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라고 걱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다시 겨울이 다가오면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와 에너지 기반시설 등을 공격할 것을 대비해 추가적인 방공망 구축을 위한 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등의 지원을 요청했다.
서방 국가들은 변함없는 지원을 재차 약속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에 방공 미사일과 러시아 드론에 대응하기 위한 무기 등을 포함한 2억달러(약 2천670억원) 규모의 새 군사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오스틴 장관은 “우리는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모두 지원할 수 있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는 2025년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를 제공하고 러시아 동결 자산 이자로 구성된 17억유로(약 2조4천억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앞서 전날인 10일 독일은 패트리엇 미사일, 이리스-티(IRIS-T), 레오파르트 전차 10대 등으로 구성된 10억유로(1조4200억유로) 규모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이 무너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나토 회원국인 캐나다, 스페인, 불가리아도 지원을 약속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가 “또 다시 겨울을 전쟁의 무기로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이를 막아야 한다. 더 발전되고 향상된 방공 능력으로 큰 차이를 만들 수 있다”라고 했다.
다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면 미국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결국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육군 장교 출신의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의 군사 전문가 브래들리 보우먼은 뉴욕타임스에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지상전이 길어지면 이스라엘, 우크라이나가 미국한테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무기가 일부 겹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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