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가구전
기원전 4세기부터 알프스산맥 끝자락인 이탈리아 롬바르디주에 형성된 고도. 인구 200만명이 디자인 하나로 먹고 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탈리아의 두번째 도시 밀라노. 4월 초순의 밀라노는 해마다 열리는 각종 박람회로 분주하다. 지난 5일부터 열린 제45회 국제가구박람회(5~10일)도 그 중의 하나로, 한달 전에 이미 밀라노 안팎 500여개 호텔의 예약이 완료될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행사다. 박람회에 작품을 내놓은 업체만 해도 6백여개 나라에서 2500여곳에 이르고, 이를 보려 밀라노를 찾는 사람도 20만명을 훌쩍 넘는다.
출품업체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마다 2천여명이 밀라노를 방문한다. 가구업자뿐 아니다. 최근에는 건설업체와 전자업체 사람들도 밀라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도대체 건설업체나 전자업체가 가구박람회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의아스러울 수 있지만, “아파트 빌트인(bulit-in) 가구의 비중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밀라노 ’박람회의 도시’ 한달 전에 인근 호텔 500개 동 나
“행사 기간에 즈음해 파리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의 90% 이상은 밀라노가 최종 목적지라고 보면 됩니다. 빌트인 비중이 전체 가구시장의 절반에 이르면서, 밀라노를 한번 봐야 아파트에 들어갈 빌트인 가구와 가전의 국제 흐름을 읽고 1~2년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이창현 에이스침대 개발부장)
현대산업개발을 포함해 내로라 하는 건설업체들은 아파트 실내 공간을 배치하는 디자이너들을 밀라노에 대거 파견하고 있다. 아파트의 특성상 견본주택을 열고 나서 2년 내지 3년 뒤에나 입주하는 탓에, 유행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면 한물 간 가구를 들여놓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모던가구 전시장에서 만난 ㅎ건설 관계자는 “아파트값이 비쌀수록 고급 가구가 들어가는데 자칫 다른 아파트와 견줘 유행에 뒤졌거나 새로운 경향을 살려내지 못할 경우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허성주 이랜드개발 설계팀 주임은 “국내에서도 아파트는 물론 주상복합, 유통매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의 디자인 경쟁이 치열해고 있다”며 “밀라노박람회는 이런 경쟁을 뚫고 나갈 영감을 주는 기회의 공간”이라고 말했다.
건설업체 디자이너보다 더 바쁜 사람들은 아파트에 가구를 공급하는 하청 가구업체와 가구의 마감재를 공급하는 업체 사람들이다. 경쟁업체보다 먼저, 보다 정확하게 흐름을 짚어내고 국내 아파트 가구에 응용할 방도까지 마련해야, 건설업체를 설득해 아파트 가구 하청을 따낼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들은 사진 촬영이 금지된 업체 부스에서도 갖가지 방법으로 자료를 입수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다는게 업계 설명이다.
빌트인 가구 인기에 건설사 유행 앞서가기
전자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겨냥한 빌트인 가전 수요를 따내려면 국제적 흐름을 도외시할 수 없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앞다퉈 디자이너들을 박람회에 보내고 있다. 특히 올해는 2년마다 열리는 국제부엌가구전시회가 함께 개최된 데다 빌트인 가전의 비중이 여느 해보다 커져서 볼거리가 풍성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엘지전자 관계자는 “이제는 가전제품 그 자체를 제대로 만든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기는 시대는 지났다”며 “가전제품의 색감이나 마감재질, 다른 가구나 실내 분위기와의 조화 등을 감안한 디자인이 들어가야 승부를 낼 수 있어 밀라노를 찾는다”고 말했다.
유럽 유명가전업체인 ‘밀레’ 전시관에서 만난 안규문 밀레코리아 사장은 “세계적으로 빌트인 가전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기술도 점점 발전하고 있는 추세”라며 “국내 빌트인 가전의 미래를 보려면 밀라노를 찾으라는 말도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밀라노/<한겨레> 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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