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 노동조건 향상’ 이유
시당국, 주민투표로 수십억 투입
공창제 정당성 등 둘러싸고 논란
시당국, 주민투표로 수십억 투입
공창제 정당성 등 둘러싸고 논란
스위스 취리히 시 당국이 성매매 여성의 폭력 노출 위험을 줄이겠다는 등의 취지로 맥도날드의 드라이브 인 매장을 연상시키는 성매매 복합 시설인 ‘섹스 박스’를 개장해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정부가 성매매를 관리하는 공창 제도의 정당성과 성매매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둘러싼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취리히 시 당국이 26일 ‘섹스 박스’로 불리는 성매매 복합 시설의 문을 열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이 시설은 차를 탄 채로 햄버거를 주문하는 맥도날드 드라이브 인 매장이나 자동차 극장을 이용하는 것처럼, 성 구매자가 성매매 여성을 차에 태운 뒤 주차장처럼 생긴 섹스 박스에 들어가 성매매를 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복합 시설은 9개의 섹스 박스 말고도 성매매 흥정이 이뤄지는 작은 공원, 샤워·세탁실 같은 편의 시설도 갖췄다. 취리히 시 당국은 지난해 주민투표를 거쳐 건설비 260만달러(약 29억1000만원)와 연간 운영비 76만달러(약 8억5000만원)를 예산에서 조달하기로 했다. 스위스에선 1942년 이래 성매매가 합법화 돼 있으며, 성매매 종사자 대부분은 동유럽 등에서 건너온 집시 출신 여성들로 사회적 최약자다.
이에 따라 취리히 시 당국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위생적인 성매매 시설을 직접 제공하면서, 성매매 종사자의 치안문제나 건강보험가입 등 노동조건에도 개입하는 실험을 하기로 했다. 시 당국은 독일의 유사 시설을 참고했으나, 성매매 여성 상담과 경비 인력을 상시 배치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뒀다.
취리히가 이런 실험을 하는 배경에는 20년 전에 마약 허용 구역을 설정하고 제한적으로 거래와 흡입을 허용함으로써 일정 정도 마약범죄와 보건 관리에 성공한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당시 시 당국은 합법적 마약 구역에 헤로인 등을 안전하게 거래하고 위생적으로 마약을 주사·흡입할 시설을 마련했다.
하지만 성매매에도 이런 처방이 통할지를 두고는 찬반이 엇갈린다. 은퇴한 교사인 브리지타 핸슬만은 “실제론 통제할 수 없는 걸 통제하려는 노력“이라고 비판했다. 취리히 정당들 대부분은 이 시설 건설에 찬성했지만, 우파 정당이나 비판자들은 “시 당국이 성매매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성매매를 할 때 실제로 이용할 것 같지 않다”며 정당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취리히 시의 사회복지 담당자인 마이클 헤르지크는 “우리는 폭력을 줄이고 성매매 종사자들의 노동 조건을 향상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