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알파인 카운티에서 17일(현지시각) 산불이 번지고 있다. AP 연합뉴스
북미와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에 이어 서유럽에서 200년 만의 폭우로 최소 170여명이 숨진 가운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난이 선진 부국에도 ‘준비되지 않은 재앙’을 가져다주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피해는 저지대나 섬 지역 등 자연조건에 사회기반시설마저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지구온난화의 피해가 선진국 사회기반시설로도 감당이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주 서유럽의 독일 서부 및 베네룩스 3국(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에서 발생한 전례없는 홍수 사태는 이를 증명했다.
서유럽에서 이례적으로 폭우가 쏟아지자, 기존의 관개 및 치수 시설이 붕괴되는 현상을 보였다. 라인강, 뫼즈강, 아르강 등 강들이 범람했다. 본 서쪽의 슈타인바흐탈댐, 뒤셀도르프 인근 하인즈베르크의 루어댐 등은 붕괴 위험으로 주민들이 대피했다. 스위스에서도 폭우로 호수와 강들이 범람해, 수도 베른을 관통하는 강의 둑이 터졌다. 루체른 호수도 범람했고, 바젤의 시민들은 라인 강변으로부터 대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기상학자들은 연중 가볍고 골고루 비가 내리는 서안해양성 기후인 서유럽에서 이번처럼 많은 폭우가 내린 것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재난이라고 지적한다. 기온이 올라가면 수분 증발이 많아져 눈과 비의 강수량을 늘릴뿐 아니라, 더 많은 수증기를 내포한 대기에서는 강우형태가 폭우가 되기 쉽다. 특히, 한 지역에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오래 머무는 격렬한 폭우는 이번 서유럽 홍수의 원인이었다. 영국 뉴캐슬대학교와 기상청은 지난 16일 기상 저널인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스>에 발표한 글에서, 천천히 움직이는 폭우는 이번 세기 말이 되면 유럽에서 발생빈도가 14배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17일(현지시각) 독일 에르프트슈타트의 고속도로에서 침수된 차량 제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EPA 연합뉴스
<뉴욕 타임스>도 17일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극단적 기후가 부유한 세계도 강타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서유럽 홍수뿐 아니라 미국 북서부와 캐나다의 이상고온 및 산불 사태, 러시아 시베리아 동북부의 고온 및 산불 사태 등은 지구온난화 기상재난이 선진국에서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독일 출신인 프리데리케 오토 옥스포드대 교수는 지난 6월 미국 북서부의 이상고온 사태는 지구온난화가 없었다면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이 신문에 지적했다. 특히 신문은 이번 여름의 재난들은 수십년간 상승하는 기온의 재앙적인 영향을 경고해온 과학을 무시해온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8년에 발표된 광범위한 과학계의 평가는 ‘산업화 시작 때보다 지구 평균기온이 1.5℃ 상승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연안 도시들의 침수부터 시작해 전 세계 여러 지역의 작황 실패까지 재앙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지만, 탄소 배출량은 더 늘고 있다. 이 때문에 지구 평균 기온은 1880년 이후 섭씨 1~1.2℃까지 상승한 상태다.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는 섬나라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은 이번 서유럽 홍수 사태와 관련해 기후취약포럼(기후변화에 취약한 국가들의 모임)을 대신하는 성명을 냈다. 나시드 전 대통령은 “모두가 공평하게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이 비극적 사건들은 우리같은 작은 섬나라에 살거나 서유럽의 선진국에 살거나 이 기후 비상사태에서는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켰다”고 지적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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