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새벽 2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앞. 나시르 하비불라(가명) 제공
희망이 잡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게 26일로 벌써 며칠째인지 알 수 없다. 분명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수가 수백만명이라는데, 2주 가까이 되는 동안 잠을 반납하며 매달리고도 나는 고작 몇명조차 “난민”으로 빼내오지 못하고 있다. 유네스코 아프간 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와 지인 수십명 가운데, 직접적인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어 아프간에서 급히 빼내야 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 어떠한 알량한 기제와 변덕에 따라 이들에게 순서를 부여해 나열하고, 일부는 잘라냈다. 스스로가 끔찍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런 힘이 없는 내가 내 두 손으로 어떻게든 긴급 대피 항공편에 밀어넣을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탈레반 ‘공항 폐쇄’에 수만명 몰려 ‘압사’ 지경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벨기에, 터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까지 읍소하듯 연락을 돌렸다. 이들 나라는 탈레반 정권하에서 목숨이 위험한 기자, 사진작가, 여성 인권운동가 등의 활동가들을 위주로 구조 리스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22일 일요일, 온갖 고비를 넘겨 직원 하나와 그 아이들을 독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24일 화요일엔 추가로 세명이 각각 독일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의 긴급 대피 항공편 리스트에 올랐다. 내가 아프간에서 일하는 동안 여러 프로젝트에 걸쳐 협업했던 예술인 단체가 있다. 그 단체를 설립한 젊은 경영인이자 아프간에서 꽤 유명한 영상 제작자인 내 오랜 동료가 이때 독일 리스트에 오른 나시르 하비불라(가명)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통화했다. 통화 이후 잠시 긴장을 풀고 깜박 잠이 들었다.
25일 새벽 두시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한시간 전부로 이유 불문, 모든 아프간 사람들에 대해 공항 문을 닫는다는 탈레반의 발표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미군의 완전한 철수가 예정된 31일까지 공항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과 달랐다. 우여곡절 끝에 리스트에 올랐던 동료들은 절망했다. 내가 아는 유네스코의 아프간 동료들은 심각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을 줄 알고, 놀랍도록 좌절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주어진 사회질서 안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의지를 가지고 일하면서도 밤낮으로 공부하고, 외국에서 익힌 기술로 다시 고국을 일으켜보겠다 돌아온, 이 사회의 인재들이었다. 함께 탈출 방법을 알아보던 지난 열흘간 자신들은 그래도 희망을 가진다고 말하던 이들이다. 그런 동료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나는 이날 처음 보았다.
나시르는 인도에서 영화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다 마침 여름방학을 맞아 카불로 돌아왔다가 도시에 갇혔다. 13일 헤라트가 함락되었을 때, 나는 나시르에게 당장 인도로 돌아가는 티켓을 구하라고 전화했다. 나시르는 팀원들을 두고 홀로 떠날 수는 없다고 했다. 카불이 함락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있을 테니 그사이에 팀원들을 대피시킬 방법을 강구하고, 자신은 나중에 나오겠다 했다. 나시르의 예상과 다르게 카불은 빠르게 함락되었다. 수없이 많은 대사관에 연락을 돌리던 나시르는 끝내 자신의 팀원 두명을 23일 프랑스로 가는 항공기에 태워 보냈다. 그리고 24일 새벽 1시, 나시르 역시 독일로 가는 대피 항공기에 탈 자격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2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앞에 모인 탈출 인파. 저마다 펼침막을 만들어 눈에 띄려 애쓰는 모습이다. 나시르 하비불라(가명) 제공
동료 3명 탈출길 열고 나시르는 끝내 공항 진입 실패
하지만 공항으로 들어가는 일이 문제였다. 작전팀 역시 공항으로 길을 내도록 노력하겠으나 장담할 수 없다 했다. 지난 열흘간 카불 공항 입구에는 수만명이 운집해 있었다. 수소문 끝에 모처의 도움을 받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공항 사진과 리포트를 받아 분석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사람들은 더이상 나라를 떠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던 밤, 나시르는 작전팀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새벽같이 공항으로 떠났다.
나시르가 공항으로 떠나던 시각, 뜬눈으로 밤을 새우던 나는 대비책을 마련했다. 공항의 일부 게이트를 통솔하는 영국군과 연락이 닿는 영국인 친구와 긴 통화를 거쳐 진입 경로와 방법에 대해 상세한 계획을 짰다. 하지만 곧 공항이 닫힌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의 수가 우리 모두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나시르는 자칫 압사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군중들 속을 아주 천천히 파고들어야 했다. 17시간이 지났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목이 쉴 대로 쉰 나시르는 결국 포기했다. 그 군중을 뚫고 나가기란 불가능했다.
공항에서 돌아온 나시르는 영영 작별할 뻔한 나이 든 어머니와 앉아 오랜 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팀원 중 일부라지만, 그 애들이 프랑스에서 예술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진행하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나야 탈레반의 눈에 띄지 않은 채로 조금 더 인내하면 돼. 언젠가 다시 공항과 국경이 열릴 거고, 인도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때는 우리 엄마의 여권도 갱신할 수 있을 거고, 인도 비자도 금방 받아서 드릴 수 있을 거니까.”
하지만 통화 말미 나시르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금은 탈레반이 국제사회에 협력한 이들을 사면하겠다고, 국제 원조기구들의 지속적인 협력을 바란다고 하지만, 이들이 정권을 안정적으로 장악한 이후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떻게 달라질까? 함께 예술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사람들이 벌써 일부 감옥에 들어갔고, 탈레반은 내 이름을 알고, 나를 찾고 있어. 나는 언제까지 이곳에서 버틸 수 있을까?”
탈레반은 동요하지 말라고, 공포정치를 펼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성명에도 지금 공항 앞에는 필사적으로 돌진하는 사람들 수만명과 국경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수십, 수백만명이 있다. 25일과 26일 내내,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을 떠나는 비행기들이 텅텅 비어서 뜨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탈레반의 성명이 진실이기를, 이들이 자비롭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모든 힘이 풀린다.
송첫눈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