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아프리카 등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수도 아비장 거리에 손소독제 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아비장/EPA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촉발한 보건 위기로 지난해 전세계에서 5억명이 빈곤층으로 떨어졌다고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이 12일(현지시각) 밝혔다.
두 기구는 이날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코로나19 여파로 곳곳에서 보건 서비스가 붕괴되고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로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은 “시민들이 보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정부가 즉각 나서야 한다”며 특히 보편적인 의료 제공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의 후앙 파블로 우리베 건강·영양·인구 담당 책임자도 “각국 정부는 재정 압박 속에서 보건 예산을 늘리고 지키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보건 위기로 인해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 대한 지원 강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유럽의 코로나19 백신 지원이 엉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유럽이 아프리카 등에 대한 백신 지원을 늘리고 있으나, 지원 사업이 변덕스럽게 진행되고 있다고 최근 전했다. 아프리카 보건 전문가들은 유럽이 충분한 시간 여유 없이 갑자기 백신을 보내겠다고 통보하거나, 지원 물량을 예상할 수 없게 해 접종 계획을 짜기 어렵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유럽에서 오는 백신의 유효 기간이 너무 짧아 백신 접종 계획이 혼란에 빠지지는 경우도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세계보건기구 아프리카 사무소의 면역·백신 개발 조정 담당자 리처드 미히고 박사는 “지원 발표와 준비가 변덕스럽게 진행되고 있다”며 “도착하는 물량이 너무 적은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큰 나라들조차 백신 전달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털어놓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럽이 밝힌 백신 지원 물량과 실제 인도된 물량의 괴리는 아주 크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이달 초까지 회원국들이 3억5천만회 접종분의 백신을 나눠줬다고 밝혔으나, 실제 인도된 물량은 3분의 1 수준인 1억1800만회 접종분에 그쳤다. 이는 미국의 지원 물량인 2억5백만회 접종분의 절반 수준이다.
‘아프리카 백신 공급 연합’의 공동 의장인 아이오아데 알라키자 박사는 백신 공급이 진행되다가 중단되는 사태가 잦아지면서,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상황도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라키자 박사는 ‘아프리카엔 (부자나라들이) 보내는 백신은 (자신들은) 사용하고 싶지 않은 백신이라는 인상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럽이 화이자 백신을 지원하는데 특히 저조하다며 “왜 지체가 발생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3세계 백신 지원 기관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은 공급되는 백신의 유효 기간이 너무 짧고 공급량을 예측할 수 없는 문제점이 있지만, 이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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