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 있는 외무부 앞에서 21일 시위대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할 것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가스관인 노르트 스트림-2를 즉각 중단하고, 러시아를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SWIFT)에서 배제할 것 등을 주장했다. 키예프/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분리주의 세력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이 지역에 군을 투입하기로 한 데 대해 독일이 러-독 직결 가스관인 ‘노르트스트림-2’ 사업의 승인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이 즉각적인 대러 제재에 공동보조를 취하는 가운데 꺼낸 강도 높은 카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2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심각한 국제법 위반을 저질렀다”며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승인 절차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고 <데페아>(DPA) 통신 등이 보도했다. 숄츠 총리는 “상황에 극적인 변화가 생겼다”며 “경제부 장관에게 에너지 공급 안보에 대해 새로 분석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환경에서는 (노르트스트림-2) 승인은 가능하지 않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노르트스트림-2는 발트해 해저를 통과해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독일로 직접 보내는 1230㎞의 가스관이다. 저렴한 가스를 원하는 독일이 2012년 이 사업을 개시해 지난해 9월 완공된 이후 독일 당국의 승인 절차가 진행 중이다. 미국과 일부 유럽 나라들은 러시아에 대한 유럽의 에너지 의존도가 심화된다며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독일은 동맹들의 압박에도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 수위가 높아지자 ‘재검토’를 꺼내 들고 국제적인 대러 제재에 동참했다.
노르트스트림-2는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지만, 실제 폐쇄되면 주요 가스 수출 경로가 막히는 것이어서 상당한 타격이 예상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5일 모스크바에서 숄츠 총리와 회담한 뒤에도 가스관 사업은 철저히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프로젝트라면서 가동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의 발표는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통화한 뒤 나온 것이다. 총리실 대변인은 “세 사람은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위한 약속을 굳건히 지킨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며 미국, 프랑스와 함께 러시아의 움직임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조처는 독일에도 큰 부담이다. 독일은 에너지 수요의 4분의 1을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천연가스의 약 절반은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부장관은 독일의 발표에 “러시아는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고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유럽연합과 영국도 긴박하게 제재 움직임에 나섰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러시아의 5개 은행과 3명의 고액순자산 보유자에게 자산동결 등의 제재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로시야은행 등이 제재를 받으며, 개인으로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기업인인 겐나디 팀첸코 등 초부유층이 포함된다. 존슨 총리는 이번 제재 외에도 앞으로 추가할 제재들이 있다고 말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21일 공동성명을 내어 “이번 조처는 국제법과 민스크 평화협정의 노골적 위반”이라며 불법적 행위에 관여한 이들에 대해 제재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프랑스 대통령궁 당국자는 유럽연합이 러시아 정부 기관과 개인에 대한 적절한 제재 목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가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의 독립을 인정한 것은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한 약속을 어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옛 소련에 속했던 발트해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도 유럽연합과 국제사회에 즉각적인 제재를 촉구했다. 에길스 레비츠 라트비아 대통령은 총리, 외교장관과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러시아의 공격을 막고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한 가장 강력한 조처를 취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3국 외교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기 위해 이번주 중 우크라이나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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