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 탱크가 24일(현지시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강제병합한 크림반도에서 우크라이나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르먄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끝내 실행에 옮겼다. 그가 수없이 반복해온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말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남은 문제는 전쟁을 개시한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군대의 진격을 친러시아 세력 지역인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멈출 것인지, 우크라이나 전역으로 확장할 것인지다.
푸틴 대통령은 일단 이번 파병이 우크라이나 동부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24일 새벽 6시께(현지시각) 텔레비전으로 공개한 전쟁 개시 연설에서, 이번 군사행동은 친러 반정부군이 장악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라며 이 지역의 “비무장화와 비나치화”를 위한 “특별 군사작전”을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성은 우크라이나 동부뿐 아니라 북부와 남부까지 곳곳에서 터졌다. 중북부에 위치한 수도 키예프를 비롯해 북동부의 하르키우(하리코프), 서부의 리비우, 남부의 오데사 등에서 폭발음이 났다. 러시아 군대는 우크라이나 북쪽의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진입했고, 남부 크림반도에서도 북진했다. 러시아는 이미 우크라이나 국경을 둘러싸고 군사훈련 명목으로 15만명 이상의 병력을 배치해둔 상태다.
그 때문에 푸틴 대통령이 ‘동부 지역 보호’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점령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 등 서방에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를 약속하라고 요구해왔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를 위해 국경 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위기를 고조했지만, 미국 등 서구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아예 우크라이나를 접수해 친러 정권으로 교체하려는 야심을 실현하려는 수순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를 25만 병력으로 침공해 ‘프라하의 봄’이라는 자유화 운동을 무력화하고 알렉산데르 둡체크 등 개혁파를 숙청한 전례를 되풀이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하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 21일 연설에서 55분에 걸쳐 공개적으로 토로한 그의 세계관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국가성을 부정하면서, 이 지역이 러시아의 옛 영토라는 인식을 밝혔다. 또 24일 전쟁 개시 연설에서도 우크라이나 점령 계획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주민투표로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고 언급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병합했을 때처럼 국가의 운명을 주민투표로 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와 비교해 영토 면적과 인구가 2~3배인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완전히 점령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군대 또한 2014년 크림반도 전쟁에서 패배한 뒤 더 강력해졌다. 또 우크라이나 전체로 봤을 때 친러 인구는 소수이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통한 우크라이나 합병이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 제성훈 한국외국어대 교수(노어과)는 “우크라이나의 넓은 영토와 인구를 포섭할 수 없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우크라이나 점령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역을 동시 공격해 우크라이나를 최대한 흔들면서 ‘나토 가입 포기’와 중립화를 얻어내는 타협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나토 가입 의지를 밝히고 있으며, 그 맥락에서 중립화에도 반대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7일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러 가면서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를 언급했다가 이튿날 젤렌스키 대통령을 만나서는 발언을 철회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이 군사행동에 나서며,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 초반에 군사 옵션을 배제한 것이 이번 결정을 도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7일 푸틴 대통령과 화상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라며, 미국이 군사적으로 나서서 보호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11일 <엔비시>(NBC) 방송 인터뷰에서도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면 세계대전”이라고 했고, 22일에도 “러시아와 싸울 의사는 없다”고 했다.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코리 샤키 대외·국방정책국장은 “미국이 러시아와 분쟁을 무서워한다는 메시지를 러시아에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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