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있는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국민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 페이스북 갈무리.
“나는 집무실에 있다. 누구도 두렵지 않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의 침공 개시 뒤 처음으로 7일(현지시각) 수도 키이우에 있는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동영상 연설을 했다. 서구 국가들이 대피를 권하며 망명정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키이우에 끝까지 남아 승리하겠다는 결기를 거듭 보인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약 9분 동안 연설했다. 그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집무실이 아닌 다른 실내 공간이나 키이우 시내 야외에서 홀로 또는 내각 구성원들과 함께 촬영한 동영상을 공개해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월요일은 힘든 날이라고들 한다. 우리나라에 전쟁이 벌어져서 매일이 월요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낮밤이 그렇다는 사실에 익숙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전쟁이 12일째로 접어들었지만 “국민 모두가 각자 있어야 할 곳에 있다”며 “나는 키이우에 있다. 내 팀도 함께 있다. 영토 방어가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고 군인들이 정위치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들, 구조대원들, 운전수들, 외교관들, 언론인들”을 “우리의 영웅들”이라고 칭하면서 “반드시 승리를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러시아 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국민들이 “우크라이나인다움을 강력하게 보여줬다”며 “그것은 러시아에게는 악몽과 같다”고 말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대통령에 당선돼 진보적 유럽 민주국가에 걸맞은 현대화되고 투명한 정부를 만들고자 했던 꿈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말하겠다. 나는 여기 키이우에 있다. 숨어 있지 않다.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탈나치화’와 ‘비무장화’를 요구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나치의 탄압을 받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손자이지만, 러시아가 의미하는 탈나치화는 젤렌스키 정부의 제거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자신을 제거 대상 1호로, 가족을 2호로 정해놓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대피를 권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지난달 보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위한 임시 휴전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대피로에 지뢰를 심었다고 거듭 비판했다. 그는 “인도적 통로에 관한 합의가 있었지만 작동했나? 러시아의 탱크, 다연장 로켓, 지뢰들이 대신 작동했다”며 “그들은 심지어 마리우폴에서 사람들과 어린이의 음식과 약품 수송을 위해 합의했던 길에도 지뢰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물러서지 마라. 우리는 물러서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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