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의 공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 있는 한 건물의 20일(현지시각) 모습. 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이 교착상태로 향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공격 수위를 높일 것이라고 군사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앞으로 2주가 매우 중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지난 19일 공개한 ‘러시아의 공격전 평가’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를 장악하려는 러시아의 공격이 “정점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의 도시 하르키우,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 등 주요 도시를 재빨리 장악하려 했으나, 개전 3주가 지나도록 그러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러시아 군은 키이우 및 다른 곳의 주변부에서 그 지역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강화하고, (물자를) 재공급받고, 부대를 보강하려 시도하면서 기다리고 있다”며 “대체로 현재의 전진 거점 근처에서 무기한 버틸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초기 작전이 정점에 이른 것은 우크라이나 대부분 지역에 걸쳐서 교착상태의 조건을 형성하고 있다”며, 교착상태가 “수 주에서 수 개월 지속될 수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군이 키이우 외곽에서 최근 며칠 동안 참호를 파는 모습을 포착한 미국 민간업체 맥사테크놀로지의 위성사진이나, ‘우크라이나가 기진맥진해서 5월에 항복하도록 하겠다’는 러시아 의원들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이같은 평가는 러시아 군이 마리우폴 등 우크라이나 남부에서는 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키이우 등 대부분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강한 저항과 병참 문제 등으로 정체돼 있다는 미 군 당국의 평가와 비슷하다.
연구소는 그러나 “교착상태라는 게 휴전이나 사격중지는 아니다”라며 “특히 길어질 경우 교착상태는 매우 폭력적이고 피투성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연구소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솜, 베르됭, 파스샹달 전투를 예로 들면서, 전쟁에서 교착상태는 양쪽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않으면서 공격적 작전을 벌이는 조건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투 지속 의지를 꺾기 위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에 대한 폭격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잭 와틀링은 “앞으로 2주가 매우 결정적일 것”이라며, 러시아에서 나오는 모든 신호는 러시아가 공격을 완화하기보다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지난 16일 민간인 최소 수백명이 대피해 있던 마리우폴의 극장을 무차별 폭격하고, 주말 사이에 우크라이나 서부의 군사 시설 등에 두 차례 극초음속 미사일을 쏘는 등 더 난폭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퇴역 미 육군 장군인 벤 호지스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은 베를린 공수작전 같은 규모와 긴박감을 갖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속도를 높이고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베를린 공수작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의해 봉쇄된 베를린에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 등 서방이 벌인 대대적 수송 작전을 말한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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