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 대표들이 휴전 합의안 초안에 의견 접근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28일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의 시민들이 지하철역 안에 대피해 있다. 하르키우/EPA 연합뉴스
터키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5차 협상을 앞두고 두 나라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하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은 포기한다’는 내용의 휴전 합의안에 의견 접근을 이뤘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 4차 협상 직후인 16일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는 이 매체의 보도에 대해 러시아가 ‘정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어 최종 결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신문은 두 나라 간의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4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동안 요구해온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을 맞바꾸는 내용의 적대 행위 중단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침공의 목표로 내세워온 중립화·비무장화·비나치화 가운데 중립화를 중심으로 타협이 이뤄진 모양새다. 소식통들은 러시아가 요구해왔던 비나치화, 비무장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법적 보호 등 세가지는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자국 내에 외국군 주둔도 허용하지 않는 방안을 협상안으로 검토하고 있다. 대신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회원국들이 지원에 나선다’는 나토 조약 5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이 제시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터키 등 주요 국가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나라도 아직 안전 보장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거부한 나라도 없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다비드 아라하미야 우크라이나 집권당 대표 등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들은 신문에 “모든 쟁점이 초기부터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으며, 많은 쟁점에서 이견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도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 추진 등과 관련한 합의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은 여러 쟁점 가운데 안전 보장과 관련한 문제에선 의견이 모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에 따라 합의안 초안에는 크림반도 등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당한 영토를 포기할지 여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담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남겨진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다만, 아라하미야 대표는 국경 문제에 대해 “우리가 독립을 선언할 때 결정된 것 이외의 국경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양보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도 협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국민, 영토, 주권은 거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진지한 협상 자세로 나오고 균형 잡힌 제안을 내놓는다면 진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러시아는 이번에도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협상 과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진전이 있는지 여부는 말할 수 없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면서도 “안타깝게도 중대한 진전이 이뤄졌다거나 돌파구가 마련됐다고 말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나라가 29일 터키에서 시작되는 5차 협상에서 휴전에 합의하면, 안전 보장 문제 등에 대한 별도 합의문을 작성하기 위해 외교장관 회담이 추진될 예정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젤렌스키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회담과 관련한 움직임은 없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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