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터키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러시아 대표단(왼쪽)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아 있다. 이스탄불/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하되 새로운 안전보장 체제를 구성한다’는 내용의 휴전 합의안을 협상 중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지에서의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이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의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보좌관은 29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5차 평화협상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러시아에 새로운 안전 보장 시스템을 제안했다”며 “우크라이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중립국 지위를 채택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해줄 국가로 터키, 이스라엘, 폴란드, 캐나다를 언급했다. 그는 또 “중립국 지위를 채택할 경우 우크라이나 내 외국 군사기지를 유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돌랴크 보좌관은 “이 모든 것은 러시아 쪽에 넘어갔고, 우리는 공식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협상단의 다비드 아라하미야 집권당 대표는 “오늘 협상 결과는 정상 간 회담을 하기에 충분하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러시아도 이날 협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러시아 협상 대표단장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대통령 보좌관은 협상 뒤 기자회견에서 “협상이 건설적으로 진행됐다”며 “이를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 (우크라이나)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에서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일 것이다. 이는 즉각 실시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내용은 이날 회담을 앞두고 나온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 내용과 유사하다. 신문은 두 나라 간의 협상 상황을 보고받은 4명의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포기’하는 대가로 그동안 요구해온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을 맞바꾸는 내용의 적대 행위 중단안 초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침공의 목표로 내세워온 중립화·비무장화·비나치화 가운데 중립화를 중심으로 타협이 이뤄진 모양새다. 소식통들은 러시아가 요구해왔던 비나치화, 비무장화,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법적 보호 등 세가지는 합의안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신문은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자국 내에 외국군 주둔도 허용하지 않는 방안을 협상안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신 ‘나토 회원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회원국들이 지원에 나선다’는 나토 조약 5조와 유사한 방식으로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이 제시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독일·중국·이탈리아·이스라엘·터키 등 주요 국가들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나라도 아직 안전 보장 약속을 하지 않았지만 거부한 나라도 없다고 관계자가 밝혔다.
우크라이나 협상 대표들은 신문에 “모든 쟁점이 초기부터 협상 테이블에 올라왔으며, 많은 쟁점에서 이견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서도 안전 보장과 유럽연합 가입 추진 등과 관련한 합의가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남은 여러 쟁점 가운데 안전 보장과 관련한 문제에선 의견이 모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에 따라 합의안 초안에는 크림반도 등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점령당한 영토를 포기할지 여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담판을 통해 해결하도록 남겨진 상태라고 신문은 전했다.
두 나라의 이날 5차 협상은 4시간 만에 종료됐다.
신기섭 선임기자,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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