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발견된 민간인 집단 매장지 앞에서 주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집단 학살 의혹이 나오자 그동안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에 미온적이던 독일도 유럽연합에 가스 수입 금지 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부차/AFP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을 집단 학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후 러시아 에너지 수입 금지에 반대하던 독일이 가스 수입 금지 등을 포함한 추가 제재를 촉구하고 나섰다. 미국도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증거가 나올 경우, 추가 제재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크리스티네 람브레흐트 독일 국방부 장관은 3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 금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람브레흐트 장관은 이날 공영방송 <아에르데>(ARD) 인터뷰에서 키이우 인근에서 민간인 학살 의혹이 제기된 것과 관련해 “대응이 필요하다. 이런 범죄에 대응하지 않고 지나가면 안된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느끼게 될 것”이라며 서방이 며칠 안으로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합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스 수요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는 독일은 그동안 유럽연합 회원국 다수가 러시아 가스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러시아 가스 수입 금지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루이지 디 마이오 이탈리아 외무장관도 집단 학살 의혹 사건이 “새로운 경제 제재로 이어질 분노를 촉발하고 있다”며 “러시아산 탄화수소(석유·가스 등) 수입 문제를 조만간 논의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그는 유럽연합의 5차 제재에 이탈리아가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파올로 젠틸로니 유럽연합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2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를 준비하고 있지만 에너지 부문은 제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 장관도 독일이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를 낮춰가고 있지만 당장 러시아 에너지 수입을 끊을 수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는 러시아의 집단 학살 의혹이 제기되면서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날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러시아군의 명백한 민간인 학살 증거가 나오면서 미국 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추가 제재 방안으로는 러시아와 무역을 계속하는 일부 나라에 대해 2차 제재를 가하고, 러시아산 에너지와 광물, 운송, 금융 분야에 대해 추가로 제재하는 것이 거론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이 추가 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세계는 유럽보다 훨씬 넓고, 러시아도 유럽보다 훨씬 크다”며 “바다 건너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우리는 조만간 대화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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