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 부차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는 증거들이 나오자, 러시아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이미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부차 학살에 대응해 러시아에 제재를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3일 두 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미국이 내놓을 추가 제재가 무엇일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미 고위 관리들은 이전부터 ‘세컨더리 제재’ 카드를 검토해왔다고 전했다. 이는 러시아와 거래하는 제3자에게도 제재를 가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꼽힌다. 또한 광물과 운송 분야도 포함될 수 있으며, 이미 기존에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금융 분야에도 추가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고 이 매체는 보도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이러한 사진을 볼 때면 매우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러시아의 “만행”에 대해 추가 조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대러시아 추가 제재에 관해 “매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강경한 목소리가 나왔다. 독일은 수일 내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에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겨냥해 “푸틴과 그의 지지자들은 (민간인 학살의) 결과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람브레히트 독일 국방부 장관은 유럽연합이 러시아산 가스 수입 종료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금지에 소극적이었던 독일이 강경해지는 모습이다. 프랑스 또한 대러시아 추가 제재를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루이지 디마지아오 외교장관도 텔레비전에 출연해 러시아의 부차 학살은 “새로운 제재로 이어질 분개를 촉발하고 있다”며 “러시아산 탄화수소(석유·가스) 수입 문제에 대한 토론”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카야 칼라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트위터에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유럽연합 차원의 강력한 5차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에스토니아를 비롯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은 이미 지난 1일부터 러시아안 천연가스 수입을 중단했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해외 외환보유고 접근 제한,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주요 은행들 배제 등의 경제 제재를 가했다. 미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도 금지했다.
최근 러시아군이 철수한 키이우 인근 지역에서는 집단 매장된 민간인 주검이 잇따라 발견됐다. 키이우 북서부 외곽도시 부차의 아나톨리 페도루크 시장은 두 개의 대형 무덤에서 약 270명의 거주민 주검이 매장된 채 발견됐으며, 길거리에서도 손발이 묶여 처형된 이들 30여명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황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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