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 정유 업계가 최근 큰 폭의 감산에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석유 수송용 열차. 옴스크/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등의 러시아 원유에 대한 제재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면서 러시아 정유 업계가 석유 제품 생산량을 줄이기 시작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이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신문은 휘발유와 경유 등을 생산하는 러시아의 정유 업계가 지난주 들어 생산량을 하루에 170만 배럴씩 줄였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유 업계는 보통 봄철 정기 점검을 위해 시설 가동을 줄이지만, 올해 생산량 감소분은 예년보다 70% 늘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이런 생산 감소는 미국 등 서방의 러시아 에너지 부문 제재에 따라 원유 제품 구매자를 찾기 어려워지고 제품을 보관할 저장소도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러시아 2위의 에너지 업체인 루크오일은 지난달 말 알렉산드르 노바크 부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저장소들이 석유로 넘쳐난다며 정유 시설 가동 중단을 피하기 위해 난방유를 전력 생산용으로 돌릴 수 있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고 유럽연합(EU)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데 나서면서, 러시아의 원유 생산도 상당히 줄어들 전망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러시아의 원유 생산량이 다음달부터 하루 300만 배럴 가량 줄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원유 생산은 우크라이나 침공 전보다 25% 정도 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미국,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은 세계 3위의 원유 생산국이다.
원유 등 에너지 분야는 러시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문이다. 지난해 러시아 정부 예산의 45%가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로 충당됐다. 러시아가 지난 3월 한달 동안 원유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만도 121억달러(약 14조8천억원)에 이른다고 신문은 전했다.
물가도 치솟으면서 러시아 경제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은 지난 8일 기준 러시아의 연 물가 상승률이 17.5%를 기록했다고 이날 발표했다. 이는 2002년 2월(17.7%) 이후 최고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루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 물가가 급등해, 채소와 설탕부터 옷과 스마트폰까지 거의 모든 제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가치 변동이 커지면서 물가 상승 압박이 강해졌다며 앞으로도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렉세이 쿠드린 회계감사원 원장도 이날 상원 업무 보고에서 올해 물가 상승률이 17~20%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전날 올해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이 -10% 정도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서방의 제재가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적어도 2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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