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25일 우크라이나 방문을 마친 뒤 폴란드의 접경 지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신들의 목표가 러시아가 다시는 이런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약화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는 ‘핵전쟁’과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을 언급하며 미국을 강하게 견제했다. 전쟁이 장기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미-러 간의 간접전이라는 이번 갈등의 본질이 점차 분명히 드러나는 모양새다.
미국의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5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날 회담을 마친 뒤 폴란드 남동부로 이동해 미국 기자단과의 질의응답에 응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 자리에서 ‘이번 전쟁에서 미국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크라이나는 자신의 영토를 지킬 수 있는 민주적인 주권 국가로 남기 바라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화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고 말했다. 오스틴 장관은 26일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40여개국 국방장관과 함께 한 회의에선 “우크라이나의 저항은 자유세계에 영감을 줬다. 당신들은 분명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 믿고 있고, 여기에 모인 우리 모두도 그렇다”며 세계 각국에 더 많은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미 당국자들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오스틴 국방장관의 25일 발언이 이번 전쟁에서 미국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이 진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전했다. 전쟁 초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에 대항해 소요와 폭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키이우 점령에 실패하고 3월 말부터 동·남부 지역 장악으로 목표를 바꾸자, 이 나라를 지속적으로 괴롭혀 군사력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욕 타임스>도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강경하게 하고 있다면서 단순히 침공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를 약화시켜서 이번과 같은 군사적 침략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만들려 한다고 보도했다.
오스틴 장관의 공세적 발언에 러시아는 핵전쟁과 3차 세계대전을 재차 거론하며 대미 경고 수위를 끌어올렸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이날 러시아 국영방송 <페르비 카날>(채널1)과 인터뷰에서 “현재 핵전쟁 위험은 실재하며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다만, “인위적으로 핵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며 “러시아는 핵전쟁 위험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모두가 3차 세계대전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문을 외고 있”지만, 3차 세계대전의 위험은 실재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될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에 병력을 직접 투입하진 않고 있지만, 러시아는 무기를 공급하는 행위 역시 보복을 부를 수 있는 ‘적대 행위’ 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라브로프 장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사실상 대리인을 통해 러시아와의 전쟁에 나서고 있으며 대리인을 무장시키고 있다”며, 서구가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무기는 “(러시아의) 정당한 공격 목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나톨리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도 <로시야(러시아)24> 방송에 출연해 “미국이 불에 기름을 붓고 있다. 우리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쏟아붓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3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관련국들에 자제를 요청했다. 그동안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해 애써온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전쟁을 중단시키고 견고한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터키 대통령실이 밝혔다.
정의길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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