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의 공격으로 무너져 내린 우크라이나 동부 빌로호리우카의 학교 건물에서 8일(현지시각) 구조대원들이 불을 끄고 있다. 빌로호리우카/AFP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의 학교 건물을 폭격해 민간인 60명 가량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제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8일(현지시각) 밤 공개한 화상 연설에서 “(전날) 루한스크주 빌로호리우카의 학교 건물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60명 정도가 숨졌다”고 확인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 등이 보도했다. 빌로호리우카는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교전을 벌이는 전선에서 11㎞ 정도 떨어진 지역이며, 전날 90여명이 대피하고 있던 학교 건물이 폭격을 당해 파괴됐다.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주 군정 대표는 30명 정도만 폐허에서 구조됐다며 건물이 무너져 내린 탓에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숨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격에 쓰인 폭탄이 미사일은 아니다. 폭발로 아주 고온이 발생했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존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폐허에서 구조된 한 남성은 “폭격을 당하면서 3층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이 무너지고 주변이 깜깜해졌다”고 폭격 상황을 전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유엔의 우크라이나 위기 조정관 아민 아와드는 성명을 내어 이 사건은 “이 전쟁의 잔인함을 또 한번 상기시킨다”며 “민간인과 민간 시설은 전쟁 중에도 보호되어야 하며 이런 의무는 타협할 수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아동기금(유니세프)의 캐서린 러셀 총재도 성명을 내어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이 대피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학교 건물을 공격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다.
남동부 마리우폴 제철소에서는 민간인 대피 완료 이후 러시아군의 공격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철소 내 군인들은 마지막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아조우연대 소속 군인들은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군이 대포, 탱크, 박격포, 보병, 저격수까지 동원해 공격을 하고 있다”며 최후까지 전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마리우폴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제기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아조우연대 소속 일리야 소모일렌코 중위는 “우리 정부가 마리우폴 방어에 실패했고 방어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당국은 지난 8년 동안 우크라이나 방어를 방해해왔다”고 말했다. 아조우연대는 마리우폴을 주요 기반으로 한 극우 성향의 내무부 산하 조직이며, 이런 발언은 아조우연대의 주력이 제철소에 갇혀 있는 가운데 나왔다.
러시아군은 동부 돈바스 지역의 주요 교전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 포위 작전을 이어가고 있다고 <시엔엔>이 전했다. 우크라이나군 작전 참모는 “러시아군이 하르키우쪽에 대한 공격을 중단한 채 루한스크쪽으로 병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동부 도네츠크주에 인접한 하르키우주 이줌 남쪽까지 진격하며 포위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진격을 대부분 막아냈다고 밝혔으나, 루한스크주의 도네츠크주 인근 지역인 포파스나는 러시아군이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한편, 마라트 후스눌린 러시아 부총리는 이날 러시아군이 시내를 완전 장악한 마리우폴을 방문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지금까지 마리우폴을 방문한 러시아 인사 가운데 최고위층이다. 후스눌린 부총리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 지역이 평화로운 삶을 되찾기 시작했다. 할 일이 산적하며, 우리는 무엇보다 인도주의적 지원에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리우폴의 항구도 방문해 이 항구가 마리우폴 복구에 필요한 물품 수송에 활용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돈바스 지역의 친 러시아 세력과 옛 소련 소속 국가 지도자 등에게 보낸 2차 세계대전 전승절 축전에서 “여러 나라 국민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준 나치의 부활을 막는 것이 공통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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