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오른쪽)이 15일 베를린에서 열린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교장관 회의에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포옹하고 있다. 터키는 나토에 들어오겠다는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북유럽의 오랜 중립국인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터키의 반대’라는 복병을 만났다. 러시아도 핀란드의 움직임에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며 공급하던 전력을 끊는 등 실력행사에 나섰다.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1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나토에 가입을 신청한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핀란드 대통령실이 밝혔다. 그는 이 통화에서 푸틴 대통령에게 “수일 내에 나토에 가입한다”며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이 핀란드의 안보 환경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했다.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핀란드에 가해지는 안보 위협은 없기 때문에 군사적 중립이라는 전통적 정책을 거부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런 변화가 러시아-핀란드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회담이 이뤄지기 전날인 13일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인 ‘인터 라오(RAO)’의 자회사 ‘라오 노르딕’은 성명을 내어 “전력 수입 대금이 납부되지 않아 14일부터 전력 공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산나 마린 총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15일 각료 회의를 열어 나토에 가입 신청을 한다는 방침을 확정하고, 16일 의회에 동의를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곳에서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가로막는 변수가 튀어나왔다. 나토의 주요 회원국 터키의 반대였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13일 “많은 테러조직(터키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쿠르드족 정치조직)의 온상인 북유럽 국가들의 가입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외교장관도 14일 나토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베를린에 도착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가입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터키가 이 두 나라의 가입을 반대하는 이유로 터키에서 분리독립을 추구하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꼽으며 “받아들일 수 없고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터키가 언급한 쿠르드노동자당은 독립된 나라를 갖지 못한 최대 민족이라 불리는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세력으로 1984년 이후 터키를 상대로 유혈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인민수비대(YPG)는 쿠르드노동자당의 무장단체이다. 2015년 시리아·이라크에서 출현한 이슬람국가(IS)를 퇴치하는 전쟁을 수행한 시리아민주군(SDF)의 주축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 등은 이슬람국가와 전쟁에 나선 인민수비대를 적극 지원해 터키의 반발을 샀다. 이 가운데 스웨덴에는 쿠르드족 이민 공동체가 큰데다, 의회에는 쿠르드족 출신 의원들도 있다. 나토는 회원국 전원일치(나토 조약 10조)에 따라 새 회원국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터키가 끝까지 반대하면, 가입은 이뤄질 수 없다.
터키의 속내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유럽과 중동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터키는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주도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불참하면서 적극적인 중재에 나섰다. 특히, 3월29일 이스탄불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중립화’를 뼈대로 한 중재안을 이끌어내 한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4월 초 러시아군이 일으킨 ‘부차 학살’이 불거지고, 우크라이나가 영토 문제에서 비타협적인 자세로 돌아서면서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진 못했다.
터키가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최종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할지는 불명확하다. 이브라힘 칼른 터키 대통령실 대변인은 14일 터키가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 가입에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라며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으로 미국 등과 최대한 줄다리기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터키는 미국으로부터 F-35 전투기 제공 등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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