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에 폭탄을 쏟아붓고 있는 가운데 인근 도네츠크주 바흐무트에서 31일(현지시각) 폭격을 당한 곡물 창고가 불타고 있다. 바흐무트/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의 핵심 도시인 세베로도네츠크에 전투력을 집중하면서 이 도시 대부분이 31일(현지시각) 러시아군 손에 넘어갔다. 세베로도네츠크가 함락 위기를 맞은 가운데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리시찬스크마저 넘어갈 경우 루한스크주 전체가 러시아에 점령된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이날 “세베로도네츠크 대부분의 지역이 러시아인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도시가 봉쇄된 것은 아니지만 폭격 때문에 주민들을 대피시키거나 구호품을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며 “도시 내 주택의 90%가 손상을 입었고 전체의 60%는 복구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됐다”고 말했다. 로만 블라센코 세베로도네츠크 지구의 행정 대표도 이날 현지 방송에 출연해 “세베로도네츠크 주변 농촌 지역이 모두 넘어갔고 이제 남은 도시는 리시찬스크뿐”이라고 말했다. <시엔엔>(CNN) 방송은 이 발언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빠져나올 통로가 좁아지고 있다는 걸 뜻한다고 지적했다. 두 도시 사이를 흐르는 시베르스키도네츠강에 파괴되지 않은 다리가 몇개나 있는지 불확실하며,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서쪽의 도시 바흐무트에서 무기나 병력을 보내는 것도 극도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방송은 전했다.
루한스크주와 인근 도네츠크주는 2014년부터 러시아계 분리주의 세력이 일부 영토를 지배해온 지역이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 지역 등에서 고통을 겪는 민간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세베로도네츠크에서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주민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이 도시에서 오래 활동해온 구호단체 ‘노르웨이 난민위원회’의 얀 에겔란 사무총장은 <로이터>에 현지 파괴 상황이 공포스러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대 1만2천명의 민간인이 물과 음식이 부족한 가운데 전투 지역에 갇혀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폭격이 거의 끊이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대피소나 지하실에 숨어 있으며 탈출할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세베로도네츠크가 러시아군의 오랜 봉쇄로 폐허로 변한 동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2021년 기준으로 세베로도네츠크 인구는 마리우폴의 4분의 1 수준인 10만명정도다. 반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대국민 연설에서 남부 헤르손주와 북동부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일정한 전과를 올렸고 자포리자에서는 러시아군의 진격을 저지했다고 밝혔다.
한편,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트위터에 쓴 글에서 흑해를 통해 곡물을 수출하기 위해 ‘유엔 주도의 국제 해상 작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식량 수출을 저지하면서도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며 “안전한 무역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동맹국 해군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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