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스코틀랜드와 경기를 마친 뒤 함께 기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우리는 참호 속에서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싸우는 이들을 위해, 조국에 남아
매일매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뛰었다.”
올렉산드르 페트라코프(65) 우크라이나 축구대표팀 감독은 2일(한국시각) 승리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햄던 파크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 A조 준결승에서 스코틀랜드를 3-1로 이기고 2006년 이후 16년 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까지 한 경기를 남겨 두게 됐다. 이날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98일째 되는 날이었다.
경기 초반부터 활발한 움직임으로 주도권을 잡은 우크라이나는 전반 33분 상대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안드리 야르몰렌코의 로빙슛으로 선취점을 뽑아냈고, 후반 5분 로만 야렘추크가 추가골을 넣었다. 야렘추크는 우크라이나 관중석으로 달려가 포효하며 기쁨을 나눴다. 이후 스코틀랜드 캘럼 맥그리거가 추격골을 넣으며 반격에 나섰으나 종료 직전 올렉산드르 진첸코의 공간패스를 잡은 아르템 도브비크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골망을 가르며 승부를 끝냈다.
전쟁 반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축구팬. AFP 연합뉴스
이날 글래스고를 찾은 3500명의 우크라이나 관중들은 ‘전쟁을 멈추라’는 내용이 담긴 팻말 등을 들고 노란색과 파란색이 섞인 우크라이나 국기 빛으로 경기장을 물들였다. 이 중에는
스코틀랜드 축구협회(FA)에서 초청한 65명의 전쟁 고아들도 있었다. 영국 <비비시>(BBC)는 “밝은 노란색 유니폼 차림의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영혼을 쏟아부어
상처 입은 조국에 기쁨의 불꽃을 되찾아주었다”라고 썼다.
경기 전 기자회견에서 “
모두의 바람은 전쟁을 멈추는 것뿐”이라고 말하며 울먹였던 진첸코는 승리 후 “오늘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기 때문에 침착하게 경기하는 것이 중요했다.
너무나 많은 감정이 북받쳐 서로를 밀쳐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팀 맨체스터시티 소속인 진첸코는 우승 당시
트로피를 조국의 국기로 감싸 복잡한 심사를 표출하기도 했다.
본래 지난 3월로 예정됐던 이날 경기는 러시아의 침공 탓에 우크라이나 대표팀 소집이 불가능해지면서 6월로 미뤄졌다. 페트라코프 감독은 전쟁 초기 영토 방위군에 찾아가 총을 들겠다고 했다가
“당신은 팀을 월드컵으로 이끌어 달라”는 말을 듣고 축구팀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것은 우리의 위대한 목표를 향한 미약한 걸음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모든 것을 다 하겠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오는 6일 웨일스와 최종승부를 통해 카타르행 막차의 주인을 가린다.
펠레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공개서한을 올렸다. 펠레 인스타그램 갈무리
한편, 이날 우크라이나 경기를 앞두고 브라질의 축구 영웅 펠레(82)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서한을 올려 “오늘 우크라이나는 조국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다만 90분이라도 잊으려고 애쓸 것”이라며 “
우크라이나 침공을 멈춰달라”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향한 호소를 전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