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일 만에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5일(현지시각) 키이우 시내에서 검은 연기가 솟구쳐 오르고 있다. 키이우/AFP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무기를 제공한다면 공격 목표물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 경고는 러시아가 40일 만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격한 가운데 나왔다.
푸틴 대통령은 5일 <로시야-1> 텔레비전과 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로켓들을 갖는다면, 모스크바는 “우리가 아직 타격하지 않아오던 목표물들을 공격하기 위해 우리가 많이 보유한 파괴 수단들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나의 의견으로는 추가적인 무기 전달을 둘러싼 이 모든 법석은 오직 한가지 목적만 있다”며 “가능한 많은 무력 분쟁을 연장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군은 특별군사작전이 시작될 당시 515문의 로켓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지만 380문을 잃었다”며 “서방의 로켓 시스템 지원은 그들이 손실한 수량을 보충해주는 것일 뿐”이라며 이번 무기 제공이 우크라이나의 군사 상황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며 “그들이 사용하는 미사일의 사거리는 45~70㎞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최근 M142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이 로켓 시스템은 사거리가 70㎞인 정밀 유도 로켓이다. 우크라이나가 현재 사용하는 로켓보다 훨씬 먼 거리를 공격할 수 있다. 백악관 당국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 내 목표물을 공격하는데 사용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은 뒤 이 로켓을 제공하는 데 동의했다고 말했다. 앞서,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31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미국이 장거리 로켓 시스템 제공 등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도 러시아에 고통을 주거나 확전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달리 미국이 제공하는 장거리 무기들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는 동부 전선의 전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일 “우리는 미국이 고의적으로 불에 기름에 붓고 있다고 믿는다”며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다 죽을 때까지 러시아와 싸우겠다는 노선을 확실히 유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공격 목표를 확대하겠다는 푸틴 대통령의 회견 직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40일 만에 다시 공격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5일(현지시각) 러시아군이 장거리 로켓을 키이우를 향해 발사해 T-72 탱크와 장갑차량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이 탱크와 장갑차량은 우크라이나가 동유럽 국가들로부터 넘겨받아 차량수리 건물에 보관하고 있던 것들이다. 러시아군이 키이우를 미사일로 공격한 것은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한 지난 4월28일 이후 처음이다.
우크라이나 공군은 성명을 내어 “예비 데이타에 따르면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투폴레프 Tu-95’가 카스피해에서 (이번 공격에 사용된) 미사일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카스피해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여러 나라가 공유하고 있는 내해로, 키이우에서 1300㎞ 이상 떨어진 곳이다. 러시아군이 굳이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해 이렇게 먼 거리에서 장거리미사일로 키이우를 타격한 것은,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겨냥한 경고 성격도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