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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전쟁 와중에 힘 잃는 우크라이나 재벌들

등록 2022-06-06 14:56수정 2022-06-06 15:05

2014년 내전 때는 행정·군사 적극 개입
이번엔 기부금 지원 외에 존재함 상실
재벌 소유 언론 통제로 정치적 힘도 잃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자포리자의 한 요양 시설을 방문해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향력 강화, 소수 재벌들의 세력 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포리자/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각) 자포리자의 한 요양 시설을 방문해 지지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영향력 강화, 소수 재벌들의 세력 약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포리자/AF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니아 대통령의 인기가 치솟는 반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소수 신흥 재벌(올리가르히)은 영향력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5일(현지시각) 금융·제조업부터 방송까지 소유한 우크라이나 재벌 빅토르 핀추크의 수도 키이우 외곽 저택이 의용군의 임시 야전병원 등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는 재벌의 상황이 급변했음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핀추크는 지난 2월 말 러시아가 침공하자 우크라이나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면서 의용군이 자기 집을 임시로 쓰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자 의용군들은 이 집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역 언론들을 저택에 초대해 “우리는 승리를 거둘 때까지 여기 머물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2014년 동부 돈바스에서 러시아계 분리주의 세력이 내전을 일으켰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을 보여준다고 신문은 밝혔다. 소련에서 독립하면서 국유 재산 민영화 등으로 막대한 부를 챙긴 재벌들은 당시엔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고 지역 행정도 직접 맡으면서 전쟁에 적극 개입했다. 철강 재벌인 세르히 타루타는 분쟁 지역인 도네츠크주 주지사로 임명됐고, 금융·제조업·언론 등을 거느린 이호르 콜로모이스키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주 주지사를 맡았었다. 행정을 맡은 재벌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언론을 동원해 상황을 주도했고, 일부 재벌은 의용군에 직접 자금을 지원했다.

현재 상황은 딴판이다. 우크라이나군 조직이 8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비되어서, 재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어진 것이다. 지금 재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기부하는 정도라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전했다. 티모피 밀로바노우 전 우크라이나 경제 장관은 “그들은 길을 잃은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 평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재벌들이 받는 경제적 파격도 상당하다. 동남부 마리우폴에 있는 아조우스탈 제철소의 소유자인 리나트 아흐메토프는 러시아 정부에 200억달러(약 25조400억원)의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아조우스탈 제철소는 우크라이나군이 80일 이상 러시아군에 맞서 싸운 거점이었으며 장기간의 전투로 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그에 따라 우크라이나 재벌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여지도 줄고 있다. 재벌들이 소유한 텔레비전 방송들은 정부의 방송 지침과 검열 때문에 현재 정부의 공식적인 논조와 다른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전쟁이 끝난 뒤 우크라이나 정부가 재벌 손보기에 본격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젤렌스키 정부에서 재벌 규제에 앞장선 인물인 올렉시 다니로우 국가안보·국방회의 위원장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러시아 침공 이후 재벌들이 “다양한 행태”를 보였다며 이 가운데 몇몇에 대해서는 종전 뒤 책임을 묻게 될 것임을 내비쳤다.

신문은 이어 미국 등이 전쟁 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지원할 경우 부패 척결을 포함한 개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재벌들이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의 싱크탱크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오리시아 루첸비치 우크라이나 프로그램 책임자는 “우크라이나가 깨끗해지지 않는 한 회복 능력을 보이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며 “재벌들은 우크라이나 독립 이후 누려온 지원 혜택 등을 계속 받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으로 재벌 체제 약화와 서구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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