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비정부기구의 자원봉사자들이 7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니히우주 이치니아에서 폭발물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치니아/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영국의 장거리 공격 무기 지원 발표 이후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강력한 반격에 나서면서 이 지역 전투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올렉산드르 스트류크 세베로도네츠크 군정 책임자는 7일(현지시각) 현지 방송에 출연해 도시 내 시가전이 좀처럼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스트류크는 러시아군이 병력을 계속 도시 내로 투입하고 폭격을 퍼부으면서 진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도시 안에는 1만~1만1천명의 주민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미국 위성 통신 기업 ‘맥사 테크놀로지’는 이날 세베로도네츠크와 인근 도시 루비즈네가 심각하게 파괴된 모습을 찍은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시엔엔>은 위성 사진을 보면 파괴 양상이 광범하며 병원도 최소한 2곳이 파괴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세베로도네츠크와 인근 리시찬스크는 동부 돈바스를 구성하는 두 개 주 가운데 하나인 루한스크주에서 러시아군에 점령당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세르게이 소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루한스크주의 97%를 해방시켰다”고 주장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전했다. 소이구 장관은 세베로도네츠크 시내의 주거 지역도 대부분 점령했다며 러시아군이 이 도시에서 남서부 포파스나 방향으로 진격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 북서쪽에 위치한 물류 거점 도시 이줌에서도 남쪽 방향으로 진격을 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의 이런 움직임은 세베로도네츠크 서쪽을 봉쇄하기 위해 남·북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작전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남부 흑해 연안의 서부 거점 도시인 미콜라이우에서도 러시아군의 폭격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비탈리 킴 미콜라이우 군정 책임자는 폭격으로 하루 동안 민간인 2명이 숨졌고 지역 내 건물 3700채가 손상을 입거나 파괴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이 장악한 동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에서는 제대로 매장되지 못한 시신과 쓰레기로 식수가 오염되면서 콜레라 등의 감염병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현지에서 탈출한 관리들이 말했다고 <시엔엔>이 전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러시아군은 격리 조처 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미국과 영국이 사거리 80㎞에 이르는 장거리 공격 무기를 제공하기로 한 이후 세베로도네츠크 사수 의지를 밝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군이 점령한 영토 전체를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개최한 콘퍼런스에 나와 이렇게 밝히고,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는 건 우크라이나로서는 선택지가 될 수 없다며 휴전 협상 가능성도 열어놨다. 다만, 그는 협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자신이 직접 대면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안전 위험이 커지고 있는 자포리자 원전에 조사단을 파견하는 걸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 운영 기업이 반대하고 나섰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원전 운영 기업 에네르고아톰은 라파엘 그로시 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을 초대하지 않았다며 그가 조사단을 이끌고 자포리자 원전을 방문하는 것은 러시아의 원전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자력기구는 전날 자포리자 원전 시설에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에 따라 현장 조사단 파견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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