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바흐무트에서 12일(현지시각) 한 여성이 불타는 들판을 지켜보고 있다. 바흐무트/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 세베로도네츠크가 외부와 고립되면서 민간인의 탈출이 불가능해졌다. 동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의 고립 사태와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위험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13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를 통해 세베로도네츠크와 강 건너편 도시 리시찬스크를 연결하는 3개의 다리 가운데 민간인 통행이 가능하던 마지막 다리도 파괴됐다고 밝혔다. 그는 “안타깝게도 차량을 타고 도시를 빠져나오는 게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보급품을 도시 안으로 보내는 것도 불가능하고 탈출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가이다이 주지사는 이날 또 <자유유럽방송>에 나와, 치열한 시가전 와중에 도시의 70% 정도를 러시아군이 장악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완전히 고립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상 군인들을 병원으로 후송하는 것은 가능하다”며 “무기를 군인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지만 아주 힘들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간인 약 800명이 대피하고 있는 아조트 화학공장을 러시아군이 계속 폭격하고 있다며 “시내 전투가 너무나 격렬해 고층 건물들이 무너지지 않고 며칠을 더 버티기 어려울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에서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가 유럽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한 전투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대포를 포함한 화력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하고 있다며 서방에 추가적인 무기 지원을 촉구했다. 올렉산드르 모투쟈니크 우크라이나 국방부 대변인은 러시아군이 지상 시가전에서는 큰 전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으며 공군력에서는 우세하다고 설명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전했다. 모투쟈니크 대변인은 러시아군이 세베로도네츠크에서 “대포, 다연장 로켓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인 ‘루간스크인민공화국’의 에두아르드 바수린 대변인은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에 세베로도네츠크 안에 있는 우크라이나군이 사실상 고립됐다며 항복이 아니면 죽음뿐이라고 말했다.
세베로도네츠크 인근 지역의 전투도 그치지 않으면서 민간인 피해가 계속 늘고 있다. 우크라이나쪽은 러시아군이 리시찬스크에 폭격을 가해 6살짜리 어린이가 이날 숨졌다고 밝혔다. 러시아계 분리독립 세력은 우크라이나군이 도네츠크시에 있는 시장을 폭격해 어린이 한명을 포함해 적어도 3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현지 매체 <도네츠크 통신>은 시장의 가판대가 불에 타고 몇몇 주검이 바닥에 놓여 있는 사진을 공개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표준 규격인 155㎜ 포탄이 도시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돈바스 지역 곳곳이 폭격을 당하면서 기온이 오르고 있는 이 지역 농지의 곡물들이 불에 탈 위험도 커지고 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전선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인 리우바에서는 이날 포격으로 농토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들판이 불 타는 것을 지켜보던 한 현지 주민은 탈출도 포기했다며 “어디로 갈 수 있겠나? 맞아줄 사람은 있겠나? 너무나 두렵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의 흑해 봉쇄로 농산물 해상 수출이 거의 막힌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서 육로를 통해 발트해 쪽으로 보내진 뒤 해상으로 수송된 옥수수 1만8천t이 이날 스페인 북부 항구 도시 라코루냐에 처음 도착했다고 <시엔엔>이 전했다. 현지의 동물 사료 업체 아가파크는 성명을 내어 “러시아의 봉쇄를 피해 발트해를 거치는 ‘새로운 항로’가 열렸으며 이를 이용해 곡물을 수송했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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