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잇따라 줄이고 나섰다. 독일에 있는 러시아산 가스 압축 시설. 말노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독일과 이탈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잇따라 줄이고 나섰다. 러시아는 캐나다의 제재 때문에 가스관 장비가 제때 공급되지 않은 탓이라고 주장한 반면 독일은 가스 가격 상승 등을 노린 정치적 결정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이 16일(현지시각) 발트해 해저 노드스트림1 가스관을 통해 독일로 보내는 가스 공급량을 줄인다고 트위터를 통해 밝혔다고 <에이피>(AP)이 보도했다. 가스프롬은 전날도 독일에 대한 가스 공급 축소를 발표했으며, 이에 따라 노드스트림1을 통한 공급량이 평소보다 60% 줄게 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가스프롬은 이날 이탈리아 가스 업체 에니에 공급하는 가스량도 15% 가량 줄인다고 통보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보다 높은 나라들이다. 두 나라에 대한 공급 축소 조처는 불가리아, 폴란드, 핀란드, 네덜란드, 덴마크에 대한 가스 공급 중단에 이어 나왔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헐의 에너지 정책 전문가 시모네 타글리아피에트라는 유럽의 전력 업계에 대한 러시아 가스 공급량이 올 연말까지 10% 정도 줄 것으로 분석했다.
가스프롬은 15일 가스 공급 축소를 발표하면서 이는 캐나다 정부의 제재 조처 때문에 독일 업체 지멘스에너지로부터 관련 장비 공급이 막힌 탓이라고 밝혔다. 지멘스는 가스관에 사용하던 터빈을 점검하기 위해 캐나다 몬트리올로 옮겼으나, 캐나다 정부의 제재 때문에 가스프롬에 다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경제 장관은 이번 조처가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상황 전개는 러시아 쪽의 설명이 단순한 핑계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며 “이런 전략은 주민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가스 가격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도 러시아가 여러 유럽 국가에 의도적으로 가스 공급을 줄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유럽 가스 업체들은 공급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겨울철을 앞두고 가스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에너지 정책 전문가 타글리아피에트라는 <에이피>에 “러시아는 유럽의 단결을 약화시키기 위해 몇 가지 목표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가스 가격을 올리기 위한 시장 조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또 다른 목표는 작은 국가들에 대한 가스 공급을 먼저 차단하면서 “큰 나라들에게 가스 공급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유럽연합은 이날 이스라엘·이집트와 가스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 양해각서는 이스라엘이 지중해에서 생산한 가스를 이집트로 보내 액화 처리한 뒤 유럽연합에 공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유럽연합이 올해 이집트에서 수입하는 가스량이 40% 증가하고 내년에는 두배로 늘어날 것이라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