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에서 러시아 군인이 경계를 서고 있다. 두 나라의 전투가 이 원전 주변에서 격렬해지면서 원전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 에네르호다르/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주요 전투 지역이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 인근으로 옮겨가면서, 원전 안전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이 원전은 이틀 연속 폭격을 당했으며, 주변에서 전투가 격화할 경우 방사능 누출 사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영국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남부 헤르손주 지역으로 병력을 집중 배치하면서 자포리자시 인근에서 헤르손까지 약 350㎞에 이르는 지역에서 전투가 격렬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지역은 유럽 최대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이 있는 곳이다.
자포리자 원전은 지난 주말 이틀 연속 폭격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국영 원전회사 에네르고아톰은 6일 밤 러시아군이 자포리자 원전에 포격을 가해 원전 작업자 1명이 다치고 방사능 감지기 3개가 손상됐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에네르고아톰은 러시아군의 로켓이 사용 후 핵연료 보관 용기 174개가 있는 저장소에도 떨어졌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초 이 원전을 점령한 러시아 쪽은 이번 공격이 우크라이나군이 벌인 일이라고 반박했다. 러시아 점령지인 자포리자주 에네르호다르의 지역 정부는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군이 다연장 로켓포로 원전의 사무용 건물과 저장시설을 공격했다고 주장했다. 지역 정부는 사용 후 핵연료 저장시설과 방사선 상황 통제소가 손상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 테러’라고 주장하며 러시아의 원자력 부문에 대한 서방의 제재를 촉구했다. 반면, 주미 러시아 대사관은 성명을 내어 우크라이나 정부군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전체에 대한 핵 위험을 조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날 자포리자 원전이 폭격을 당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도 두 쪽은 서로 상대편을 탓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자포리자 원전의 방사능 사고 가능성이 현실이 되고 있다며 두 나라에 원전 주변의 군사 활동 중단을 촉구했다.
최근 자포리자 원전 주변에서 충돌이 늘어난 것은 러시아군이 원전을 방패막이로 삼아 남부 지역에서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에 맞서는 전술을 쓸 가능성이 높아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에네르고아톰은 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러시아 군인들이 원전의 지하실을 폭격을 피하는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전쟁 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자포리자 원전 인근 지역 공격을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서면 원전 안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고, 이를 피하려면 러시아군이 원전을 ‘안전 지대’로 삼아 공격하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 북부와 북서부 지역에서도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피스키와 아우디이우카 주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자국군이 공격을 당했다고 전했다. 북동부 하르키우와 서부 빈니차의 군 시설도 이날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당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한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 대국민 연설에서 러시아가 헤르손 등 점령지 영토 합병을 시도할 경우 대화의 여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침략자들이 ‘가짜 주민 투표’를 강행하면 그들은 대화의 기회를 봉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 등에서 러시아와 합병을 위한 주민 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