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개월여 동안 발생한 러시아군 사상자가 7만~8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미국 국방부 차관이 추정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도로변에 방치된 러시아군 전사자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5개월여 동안 러시아 군인 7만~8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국 국방부 차관이 8일(현지시각) 주장했다. 이는 지난달 중순 미 중앙정보국(CIA)이 추정한 피해 규모 6만명보다 1만~2만명 많은 추정치다.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 담당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6개월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러시아군 사상자가 7만~8만명에 달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러시아군이 장갑차는 3천∼4천대를 잃었고 순항미사일을 포함해 정밀유도 미사일도 부족해졌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칼 차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 초기 세웠던 (우크라이나) 전국 점령 등의 목표를 러시아군이 전혀 달성하지 못한 걸 고려할 때 이런 손실은 꽤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0일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 국장은 러시아군 사상자가 사망 1만5천명, 부상 4만5천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번스 국장은 우크라이나군 사상자도 상당하지만 러시아군보다는 적을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디아조나>와 영국 <비비시>(BBC)가 언론 보도 등 공개 자료를 추적해 집계한 러시아군 사망자는 지난달 29일까지 5185명이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는 유엔 집계 기준으로 지난달 25일 현재 사망자 5237명, 부상자 7035명이다.
러시아군이 막대한 피해를 본 가운데 러시아군이 사용하는 무기에 미국, 유럽, 아시아 기업이 만든 전자 부품이 많이 쓰였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와 <로이터> 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에서 확보한 러시아 미사일 등의 무기 시스템 27개를 분석한 결과, 미국·유럽·아시아 등 외국에서 만든 반도체 등 전자 부품 450개가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미국 기업이 만든 부품이 317개로 가장 많았고 일본 34개, 대만 30개, 스위스 18개, 네덜란드 14개, 독일 11개, 중국과 한국 6개, 영국 5개, 오스트리아 2개였다.
개별 기업별로는 미국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와 ‘아날로그 디바이스’의 부품이 특히 많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의 최신 무기인 9M727 순항미사일에서는 텍사스 인스트루먼츠, ‘어드밴스드 마이크로 디바이스’(AMD), ‘사이프러스 세미컨덕터’ 등의 전자 부품이 확인됐다.
450개 부품 가운데 미국 정부가 그동안 군사 무기용으로 수출을 통제한 부품은 18%였다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한 이후 군사용 부품의 러시아 수출을 금지했다. 군사용으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는 부품의 경우 러시아의 올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는 수출 승인이 필요 없었지만, 수출 기업들은 자사 제품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않는다는 걸 보장할 의무가 있었다고 연구소는 지적했다.
아날로그 디바이스는 러시아 사업을 중단하고 러시아에 대한 자사 제품 공급도 중단시켰다고 밝혔고, 텍사스 인스트루먼츠는 러시아 무기에서 나온 자사 제품은 상업용으로 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왕립합동군사연구소는 서방이 러시아에 대한 수출 통제를 강화할 경우 러시아군이 첨단 무기와 통신 시스템을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군 전력에 장기적인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서방의 제재를 우회해 전자 부품을 확보할 방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으며, 많은 부품은 홍콩 등 아시아의 유통 업체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