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국유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스업체 유니퍼의 본사 앞에 이 회사 로고가 표시되어 있다. 뒤셀도르프/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의 많은 에너지 기업들이 자금난에 시달리는 가운데 독일 최대 가스수입 업체 유니퍼의 국유화가 임박했다.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가 자국 전력 회사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한 데 이어 독일이 유니퍼 국유화에 나서면서 에너지 기업을 살리기 위한 유럽 정부들의 개입이 빨라지고 있다.
유니퍼는 20일(현지시각) 독일 연방정부와 자사의 모기업인 핀란드계 포르툼이 지난 7월 마련했던 구제 금융 방안을 변경하기 위한 마지막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은 유니퍼를 사실상 국유화하는 내용이며, 이르면 21일 최종 합의안이 발표될 전망이다.
유니퍼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공급을 줄이자 현물 시장에서 값 비싸게 가스를 조달하면서 자금난에 직면했고, 독일 정부는 지난 7월 150억유로(약 20조8400억원)의 구제 금융 방안을 내놨다. 이 방안의 하나로 독일 정부는 이 회사 지분 30%를 인수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가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 가동을 중단하는 등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한층 줄이자, 국유화로 돌아섰다. 유니퍼는 올해 상반기에만 123억유로(약 17조9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독일 정부는 핀란드 업체 포르툼이 갖고 있는 이 회사 지분 56%를 인수하는 한편 증자 등을 통해 80억유로(약 11조1100억원)를 새로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가 유니퍼 국유화에 투입할 자금 총액은 290억유로(약 40조2900억원)에 달할 전망이며, 독일 정부의 지분은 90%를 넘게 될 것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독일은 이미 러시아 에너지 기업 가스프롬과 로스네프트의 독일 내 자회사들을 직접 관리하고 있으며, 독일 3위의 가스 기업 브이엔지(VNG)도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독일 정부는 최근 에너지 기업들의 경영 어려움 해소를 위해 모두 670억유로 지원을 약속했다.
독일의 유니퍼 국유화 이후 다른 나라 정부들도 에너지 기업 지원 압박을 더 강하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앞서 지난 6일 스위스 정부는 자국 최대 재생에너지 전력 기업인 악스포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40억스위스프랑(약 5조78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핀란드와 스웨덴 정부도 각각 100억유로(약 13조5400억원)와 2500억크로나(약 31조5천억원)의 전력 기업 지원 방안을 내놨다.
유럽 전력 회사들은 전력 가격 변동에 대비하기 위해 선물 시장에서 전력을 미리 판매하고 있는데, 최근 전력 가격이 폭등하면서 선물 거래에 필요한 증거금도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노르웨이 에너지 그룹 에퀴노르는 유럽 에너지 기업들이 선물 거래를 위해 추가로 조달해야 할 자금이 적어도 1조5천억유로(약 2084조원)에 달할 걸로 평가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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