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에너지 시설 집중 공격으로 우크라이나 전력 부족이 심해지는 가운데 남부 미콜라이우에서 한 자원봉사자가 주민들에게 나눠줄 장작 난로를 옮기고 있다. 미콜라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력 시설를 파괴하는데 집중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정부가 20일(현지시각) 하루동안 전력 공급을 제한하는 등 겨울철 에너지 위기 대응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키릴로 티모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차장은 1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일 20일에 우크라이나 전역에 전기 공급이 제한된다. 오전 7시부터 밤 11시까지다. 전력 사용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정전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 발표 이후 우크라이나 전력망 운영사인 우크레네르고는 전력 공급 제한은 이날 하루만 실시될 것이지만, 제한 조처가 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체 발전소의 30%가 러시아군의 공격을 당했다며 발전소에 대한 보호를 강화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고위 당국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며 “에너지 시스템이 붕괴될 때의 충격을 막기 위한 조처”를 논의하며, “각 도시와 마을의 주요 기반시설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이동형 발전 시설을 구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전력 사용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시내 건물들에 대한 난방 공급을 예년보다 며칠 앞당겨 20일부터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주민들이 전기 히터 등으로 난방을 하면서 전력망에 부하를 가중시키는 걸 막기 위한 조처라고 설명했다. 서부 주요 도시인 르비우의 안드리 사도비 시장도 이날 현지 방송에 출연해 며칠 전 공격을 당한 변전소를 고치는 데 몇달이 걸릴 것이라며 그동안 전력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불을 꺼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조처다. 절약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공격은 이날도 이어졌다. 서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에 자리한 부르시틴 화력발전소가 러시아군의 공습을 당했다. 이 발전소는 서부 3개 주 500만명에 대한 전력 공급을 담당하고 있다. 주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이 발전소는 그동안 공격을 받지 않았으나, 지난 10일 4개의 미사일이 떨어지는 등 최근 주요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격렬한 전투를 겪은 하르키우 등 동북부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 지역에는 집이 파괴되고 전력·수도·가스가 공급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야외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등 고통스런 삶을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쿠피안스크에 사는 9살 어린이 아르템 판첸코는 “추위와 폭격 때문에 너무 힘들다. 밤에는 옷을 모두 입고 자는데, 너무 춥다”고 말했다. 이웃 마을 주민 빅토르 팔리야니차(37)는 집의 유리창이 모두 깨져서 곧 무너질 것 같은 헛간에서 나무로 불을 때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땔감용 나무를 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다며 당분간은 헛간에서 계속 지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르키우주 지방 정부 관리인 로만 세메누하는 당국이 이 지역에 전력 공급을 재개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그 뒤에 수도·가스 시설 수리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반시설 수리가 모두 끝난 뒤에야 난방 공급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우크라이나군의 강력한 공격을 받아 고립되고 있는 남부 헤르손시에서는 주민들의 탈출이 본격 시작됐다. 러시아 국영 방송은 이날 헤르손 주민들이 배를 타고 드니프로강 남쪽으로 탈출하는 모습을 방영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헤르손시의 블라미디르 살도 행정수반은 시 행정 담당 직원들도 드니프로강 너머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헤르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 초기인 지난 3월 초 점령한 남부 지역의 주요 도시인데, 최근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주 북부에서 진격해 들어오면서 고립 위기에 처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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