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각국 정상들이 나무 심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명시한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16일 폐막했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15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이번 회의에서 “전쟁”이라는 표현을 넣을지를 두고 서방과 러시아·중국 사이에 진통이 이어지는 등 주요 20개국 사이의 분열이 노출됐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16일 주요 20개국 정상들이 이와 같은 내용의 16쪽짜리 공동성명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공동성명에는 “그것(우크라이나 전쟁)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세계 경제에 존재하는 취약성을 악화시켰다. (경제) 성장을 제한하고 인플레이션을 증가시키고 공급망을 교란하며 에너지와 식량 불안을 고조하며 금융 안정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고 적시됐다. 또한 “핵무기의 사용이나 위협은 용납될 수 없다. 갈등의 평화적 해결, 위기 해결 노력, 외교와 대화가 필수적이다. 오늘날의 시대는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고 전했다. 선언문에 러시아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이 “전쟁”이라는 표현 사용에 반대하며 러시아 편에 서 있어 막판 조율에 진통을 겪었다고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익명의 외교관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외교관은 러시아는 자국과 우크라이나의 무력 충돌에 대해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입장이었고 중국이 동조했다. 하지만 다른 회원국들은 찬동하지 않았고, 결국 공동성명에 “상황에 대한 또다른 시각과 다른 평가가 있다”는 구절을 넣어 절충을 했다.
중국의 태도는 미국이 걸어오는 전방위적 압박에 맞서 그동안 유지해온 러시아와의 ‘전략적 외교 관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그동안 러시아가 “적법한 안보 우려”를 갖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의 “궁극적인 범인”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라고 주장해왔다. 러시아와 중국은 애초 공동성명 작성을 위한 협의에서 애초 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안보 문제를 논의할 적당한 회의체가 아니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반대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실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고심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14일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 사용과 위협에 대해 반대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비동맹 외교 노선을 취해온 인도 역시 러시아를 명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15일 정상회의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정전과 외교의 길로 돌아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되풀이해 말한다”며 외교적 노력을 강조했다. 다만, 인도 역시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는 않고 있다. 공동성명에 들어간 “오늘날의 시대는 전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표현은 모디 총리가 지난 9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한 “지금은 전쟁의 시대가 아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공동성명 초안 작성 협상 참여자들의 말을 인용해 인도 대표단이 초안 작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올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 대립 때문에 개막식 공동 사진촬영도 하지 못한 채 시작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의에 불참했고, 대신 참석했던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부 장관도 회의 폐막 하루 전인 15일 발리를 떠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이 극심했던 올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사상 처음으로 공동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끝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있었으나, 러시아는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조기원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gard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