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부분 동원령 발표 이후인 지난 9월27일(현지시각) 러시아-조지아 국경의 베르흐니 라르스 국경검문소에 국경을 넘으려는 러시아 청년들이 몰려들고 있다. 베르흐니 라르스/타스 연합뉴스
전쟁은 모두를 파멸로 이끈다. 피해국 국민은 물론, 가해국 국민의 희생도 강요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국민도 예외는 아니다. 전쟁에 동원돼 희생되거나 참혹한 명령을 따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전쟁을 피하고자 삶터를 떠나 사선을 넘는 이들도 있다. 전쟁의 참상을 전하기 위해 지난 3월과 6월, 두차례 우크라이나 현지를 취재한 <한겨레>는 지난 10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전쟁을 피해 국경을 넘은 러시아 청년 5명을 만났다. 러시아 변방인 부랴트 공화국에 살았던 이들이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고,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었으며, 전쟁에 분노하고 있었다. 인터뷰한 청년들의 신원 노출이 우려돼 가명으로 처리했다. <편집자>
카사노프(30)는 지난 9월21일(이하 현지시각) 아침,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티브이(TV)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발표하고 있었다. 특정 민간인을 군으로 징집하겠다는 것이었다. 몽골계 부랴트족인 카사노프의 부모님은 “여기 있으면 무조건 전쟁터에 끌려간다”며 아들의 등을 떠밀었다. 만삭인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출산을 7주 앞두고 있던 때였다.
카사노프는 가족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전쟁터에 끌려가 영영 가족을 못 보는 것보다 잠시 이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부랴트 수도인 울란우데로 갔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몽골 울란바토르로 가는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몽골은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다. 하지만 버스표를 구할 수 없었다. 모두 매진이었다. 부분 동원령을 피하려는 이들이 몰려든 탓이다. 택시를 타고 몽골 국경 쪽으로 갔다. 국경을 넘으려는 차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는 최대한 국경 쪽으로 걸어가 자리가 남은 또 다른 택시에 올라탔다. 5시간 만에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지난해 제대한 데미도프(23)도 고향 집에서 쉬고 있다가 전쟁을 피해 몽골로 도망쳤다. 9월22일 부랴트를 떠나 이튿날 새벽 3시에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그는 “부랴트에 남았다면, 분명히 징집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보다 나이가 13살이나 많고 아이가 3명이나 있는 같은 마을 사람도 부분 동원령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어린애들한테도 동원령 통지서가 날아왔다고 하더라고요.” 그가 말했다.
같은 고향 출신인 카사노프(30), 바토에프(24), 데미도프(23)가 각각 30만투그리크(12만원)씩 모아서 살고 있는 집 주변 사진. 울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그와 어릴 적 같은 마을에서 지낸 바토에프(24)는 동원령 통지서를 전달하는 담당자와 하마터면 마주칠 뻔했다. 바토에프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일하다가 지난 8월 고향 부랴트로 돌아왔다. 가축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건초 더미를 준비하는 등 부모님 일손을 도왔다. 9월22일 마을 사람들과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누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오더니 그를 일터 밖으로 불러냈다. “집까지 뛰어가서 15분 안에 옷 챙겨서 나와.” 러시아 정부가 동네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간다는 소식을 누나가 들은 터였다. 바토에프는 그길로 집을 나와 23일 몽골로 넘어왔다. 그리고 이튿날 동원령 담당자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 아들을 찾는 이의 말에 바토에프의 어머니는 기지를 발휘했다. “아들이 모스크바로 간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아들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조금만 늦었더라면, 바토에프는 동원령 통지서를 받고 총을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러시아 의사인 세르게이(29)는 동원령 통지서를 받고 나서 러시아를 탈출했다. 징역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국경을 넘은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뒤, 징집이나 전투를 거부하면 최대 징역 10년형을 내릴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강화했다. 9월 말에는 행정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아, 동원 대상자들도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한다.
독일 <데페아>(DPA) 통신은 10월9일 “(부분 동원령 발령 이후) 18일 동안 러시아 남성 약 30만명이 국외로 도피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향한 곳 중 하나가 몽골이다. 몽골은 러시아 소속인 부랴트 공화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몽골 국경보호국이 현지 언론에 제공한 자료를 보면, 국경을 넘어 몽골로 입국한 러시아인들은 동원령 발표 전 150~160명 선에서 동원령 발표 다음날인 22일 830명으로 폭증했다. 이어 증가세를 보이며 26일 1018명, 27일 998명 등 하루 1천명 가까운 이들이 러시아를 탈출해 몽골로 입국했다.
러시아의 부분동원령을 피해서 몽골로 탈출하는 차량. 영상 제공 = 데미도프
지난 9월29일(현지시각) 러시아와 조지아 사이의 베르흐니 라르스 국경 건널목에 러시아를 탈출하려는 차량들이 줄지어 있다. 알라니야/AP 연합뉴스
전쟁을 피해 몽골로 온 청년들은 건설 현장 등에서 일하며 번 돈으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다. 몽골 현지에서 러시아 청년 인터뷰는 이들의 노동이 끝나는 저녁 7시 이후에나 가능했다. 대학에서 어학 수업을 받는 청년들도 있었다. 1년 거주 비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국적을 가진 이들이 무비자로 몽골에 들어와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30일이다. 이후 추가로 30일 더 비자 연장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간 이후에도 몽골에 머무르려면 거주 비자를 받아야 한다. 현지에서 만난 초이돈 제기마 몽골 대학원 총장은 “러시아를 탈출한 청년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어학 수업을 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우리는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인간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원령을 피해 온 이들을 입국 거부한 한국도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몽골에서 만난 러시아 청년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길어지는 전쟁에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날을 기약할 수 없고, 징집 대상자들은 러시아 정부에 붙잡히면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징집 대상자가 아니어도 언제든지 전쟁에 동원될 수 있다는 불안이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청년들은 개인정보가 드러날 수 있는 물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주변을 경계했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떠올릴 때만큼은 달랐다. 카사노프는 뱃속 아이의 태동을 느끼지 못해 속상하다고 했다. 그는 집을 떠난 뒤 한달여가 지난 10월25~27일 아내를 만났다. 만삭의 아내가 뱃속 아기와 함께 남편을 만나기 위해 몽골 국경 인근까지 찾아온 것이다. “3일 동안 아내 배에 손을 대고 계속 나의 ‘작은 아이’를 느꼈어요.” 이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아내에게서 받은 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오늘 병원에 다녀왔는데, 우리 아이가 건강하대요. 아이가 매일 배를 발로 차요. 우리가 곧 함께하기를 희망해요.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해요.”
카사노프가 부인에게 받은 편지. “우리가 곧 함께하기를 희망해요. 우리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기다리고 있어요. 사랑해요”라고 적혀 있다. 카사노프 제공
젊은 아빠는 아이의 이름을 묻는 말에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아이 이름은 제 마음속에만 있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에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름을 말하지 않는 풍습이 있어요.”
이들 청년이 10년형에 처해질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도피 생활을 선택한 이유는 분명했다. 죽기 싫어서, 그리고 사람을 죽이기 싫어서다. 러시아 전역에서 반전 시위에 나선 수많은 청년은 “푸틴을 위해 죽고 싶지 않다” “우리의 남편, 아버지, 남자 형제들은 다른 사람들의 남편과 아버지를 죽이기를 원치 않는다”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국경을 넘은 청년들은 명분 없는 침략 전쟁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러시아에서 지질·지반 관련 엔지니어였던 로마노프(29)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부터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청년은 러시아 정부가 소수민족 위주로 강제징집을 하고 있는 것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세르게이는 “러시아가 제일 먼저 전장으로 보내는 이들은 부랴트 사람들이다.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체첸 전쟁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앞서 영국 언론 <가디언>도 9월22일 “러시아 소수민족이 불균형적인 동원령에 영향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 거주하는 예비군 대신 시베리아 동부 등에 사는 소수민족을 전쟁에 투입하려 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경향은 전사자 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러시아 독립 언론사인 <메디아조나>가 영국 <비비시>(BBC)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망한 러시아 군인에 대해 집계한 자료를 보면, 전쟁이 발발한 2월24일부터 11월30일까지 부랴트 공화국 출신은 350명이었지만, 모스크바 출신은 51명에 불과했다. 이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발표와 사망자 가족과 친척들의 정보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집계된 수치다.
“바이칼 호수에 가봤나요?” 인터뷰 때 카사노프는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에요. 저는 모든 것이 곧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언젠가 호수처럼 평화가 찾아와 제가 집에 돌아가게 되면, 당신을 꼭 초대할게요.” 전쟁을 피해 이국으로 도망친 청년의 얼굴에 평온이 스친 순간이었다.
지난달 중순 카사노프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평화는 오지 않았지만,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전쟁터로 끌려갈 위험을 감수하고 다시 국경을 넘은 것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한 아이 이름을 품고서. 그는 몽골을 떠나기 전, 주변에 “아이를 만나고 난 뒤,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3일 현재, 그는 아직 몽골로 돌아오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지난 9월 30만명에 이어 추가 동원령이 발표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다시 수많은 청년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사력을 다해 국경을 넘어야 할 것이다. 남은 이도, 떠난 이도, 저마다의 전쟁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울란바토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지난 10월31일 몽골 울란바토르의 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취재진(맨 오른쪽)과 부랴트인 세 사람이 서로의 행운을 빌며 악수를 하고 있다. 통역 칭바트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