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터키)를 통한 러시아 석유 우회 수입 논란에 휩싸인 다국적 석유 기업 셸의 네덜란드 정유 시설 모습. 페르니스/EPA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와 정유 제품 수입을 금지한 뒤 러시아 원유 의존도가 높은 튀르키예(터키)에서 정제된 석유 제품이 유럽으로 많이 수입되면서 ‘우회 수입’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9일(현지시각) 영국계 다국적 석유기업 셸과 스위스에 본사를 둔 에너지 무역기업 비톨이 최근 튀르키예에서 많은 석유 제품을 수입하면서 유럽연합의 러시아 제재를 피해가는 ‘우회 수입’ 논란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논란은 올레크 우스텐코 우크라이나 대통령 경제 고문이 두 회사에 대해 ‘러시아 원산의 유류’ 무역 중단을 요구하면서 표면으로 떠올랐다. 우스텐코는 셸의 와일 사완 최고경영자에게 편지를 보내 비록 유럽연합의 제재를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튀르키예 정유 시설에서 “세탁된” 러시아 석유 제품을 거래함으로써 제재의 허점을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톨에 대해서도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천연자원 관련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 ‘글로벌 위트니스’의 자료를 보면, 유럽연합이 유조선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지난해 12월5일 이후 셸이 러시아산 원유를 이용하는 튀르키예 정유업체로부터 수입한 물량이 60만배럴을 넘는다. 비톨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지금까지 1년 동안 튀르키예의 2개 정유 업체에서 277만배럴의 석유 제품을 수입해 라트비아·키프러스·네덜란드에 공급해왔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이들 정유 업체들은 러시아산 원유를 많이 수입하고 있으며, 이 중 한 곳은 지난해 러시아에서 수입한 물량이 전체 도입 물량의 73%인 6000만배럴이었다고 지적했다. 튀르키예 정유업계가 지난해 12월5일 이후 지금까지 유럽에 수출한 정유 제품 규모는 모두 500만배럴에 달한다고 이 단체는 덧붙였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12월 5일 유조선을 통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5일부터는 경유(디젤) 등 정유 제품도 수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제3국의 제품은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서방의 자국산 원유 제재에 맞서 중국·인도·튀르키예 등에 대한 원유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인도와 튀르키예의 정유 업계는 러시아산 원유를 정제한 뒤 수출함으로써 러시아 원유의 ‘우회 수출로’를 제공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셸의 대변인은 “우리는 러시아산 원유와 정유 제품을 수입하지 않으며 (유럽연합의) 제재를 준수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이 합법인 나라에서 정제된 제품 구매 금지는 제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톨도 “국제 규정에 따르면 튀르키예 정유 시설에서 수입한 제품은 ‘러시아 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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