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34개국이 20일(현지시각)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의 ‘중립 자격’ 파리 올림픽 참가를 반대하고 나섰다. 파리 에펠탑이 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 올림픽 상징물이 세워져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방 34개국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에게 ‘중립 자격’으로 내년 파리 올림픽 참가를 허용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비판하고 나섰다. 여기에는 중립 자격 참가안을 지지했던 미국도 동참하면서, 올림픽이 냉전 시대의 동서 대결을 연상시키는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일(현지시각) 국제올림픽위원회에 러시아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허용 재검토를 요구하는 34개국 체육 담당 장관의 공동 성명을 공개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성명에 참가한 나라들은 유럽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캐나다·뉴질랜드 등이며,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과 일본이 참여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지난달 25일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이 자국을 대표하지 않는 ‘중립 자격’으로 아시아 지역 예선 등을 거쳐 내년 파리 하계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올림픽위원회는 이런 결정을 내리면서 두 나라 선수들이 단지 국적 때문에 올림픽에서 차별을 당해서는 안된다는 유엔 인권 전문가들의 지적을 거론했다. 이 결정 이후 우크라이나는 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고 폴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덴마크 등이 동조하고 나섰다.
34개국 장관들은 성명에서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정치와 스포츠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며 “두나라의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어떻게 ‘중립 자격’으로 경쟁할 수 있는지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프로 테니스 선수 등과 달리) 이 선수들은 자국 정부로부터 직접적으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며 “러시아 선수들이 러시아군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장관들은 “이 때문에 우리의 집단적인 접근법은 단지 국적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며 “올림픽위원회는 이런 우려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또 두 나라 선수들이 국제 스포츠계에 복귀하는 것은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대응에 달린 문제라며 두 나라 정부에 우크라이나 침공 중단을 요구했다.
서방의 이런 움직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때문에 파리 올림픽이 분열 양상을 보이는 걸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 강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지적했다. 올림픽위원회는 냉전 시대였던 1980년대에 동서 대결 때문에 올림픽 보이콧이 이어지던 사태가 재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때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올림픽에 불참했고, 4년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는 소련 등 동유럽 국가들이 서방의 보이콧에 대한 보복으로 올림픽에 나오지 않았다.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에 대한 올림픽위원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한 파리 올림픽에 러시아 정부 대표단은 참가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내년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열리는 파리 올림픽에는 모두 32개 종목의 선수 1만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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