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러시아 군인들이 티브이를 통해 듣고 있다. 타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1주년을 앞두고 한 국정 연설에서 미-러 간 핵무기 감축 협정인 ‘뉴스타트’(New START·신전략무기감축협정)에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카드’를 내세워 미국을 강하게 견제하는 모양새다.
21일(현지시각)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나는 오늘 러시아가 전략적 공격 무기 조약(신전략무기감축협정) 참여를 중단한다고 발표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했다. 이어, “미국이 먼저 (핵실험을) 한다면, 러시아도 핵무기 실험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며 “국방부와 (국영 원전기업) 로사톰이 이를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만 이 결정이 “조약 탈퇴가 아닌 참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러 간에 남은 유일한 군축 협정인 이 협정은 두 나라가 실전 배치하는 핵탄두 수를 각각 1550기 이하로 유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2011년 발효된 협정은 양국 관계가 악화하며 진통을 겪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2021년 2월에 간신히 연장 합의(기한 5년)가 이뤄졌다. 하지만 2022년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뒤 러시아는 그해 8월로 예정된 미국 사찰단의 방문을 불허하는 등 협정 이행을 거부해왔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으로 미-러 간 무모한 핵 경쟁을 막아주던 ‘유일한 안전판’인 이 협정의 운명이 위태롭게 됐다.
그리스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로이터> 통신 등 언론에 “러시아의 발표는 매우 유감스럽고 무책임하다”며 “러시아가 실제 무엇을 하는지 우리는 유심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 세계를 위해 언제라도 러시아와 전략적 무기 제한에 대한 대화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러시아는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불러들여 우크라이나에서 서방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계속해 개입하고 있다며 “상황 완화를 위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고 러시아를 목표로 한 적대적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트레이시 대사에게 요구했다. 또한 러 외무부는 지난해 9월 발트해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 폭발 사건에 대해서도 미국이 설명해야 하며, 미 정부가 사건의 객관적 조사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대사를 통해 전달했다. 최근 미국의 유명 탐사보도 기자는 지난해 6월 미 해군이 노르트스트림에 폭발물을 설치했으며, 미 중앙정보국(CIA)이 관여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폭파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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